[특파원 코너-노석철] 토자패와 중국의 대북전략 기사의 사진
중국 지린성 훈춘의 동쪽 끝에는 러시아 국경을 알리는 토자패(土字牌)가 세워져 있다. 토자패에는 중국 역사의 한과 치욕이 서려 있다. 19세기 중반 쇠락한 청나라는 2차 아편전쟁(1856∼60)으로 방대한 북동지역 영토를 러시아에 내줘야 했다. 1858년 아이훈 조약으로 헤이룽장 이북의 60만㎢를,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우수리강 동쪽 연해주와 사할린섬 등 40만㎢를 할양했다. 그때부터 중국 영토는 동해와 단절됐다.

청나라는 이후 1861년 러시아와 국경선을 획정하고 극동지역에 20개의 경계비를 세우기로 했다. 동쪽 끝은 동해에서 15㎞ 정도 떨어진 두만강변이었다. 그런데 청나라 관리들이 귀찮아서 일부 비석은 버리거나 산에 세워야 할 비석을 산 아래에 두기도 했다. 결국 20개의 비석 중 8개만 세워졌고, 국경선도 내륙으로 5㎞ 정도 당겨졌다고 한다. 이를 바꾸는데 25년이 걸렸다. 1886년 관리 우다청은 러시아와 담판을 벌여 지금 자리에 토자패를 세우고 동해로 가는 출해권도 얻어냈다. 토자패 옆 안내문에는 “출해권을 되찾아옴으로써 국가 존엄을 수호했다”고 적혀 있다.

이후 훈춘은 동해로 나가는 어민들의 어항이자 무역항으로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1938년 토자패 근처 장고봉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일본이 소련에 지면서 다시 중국의 동해 출해권이 차단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 훈춘 방문길에 토자패를 둘러봤다. 중국과 북한을 이어주는 취안허(圈河) 세관을 지나 방천전망대(용호각)로 가는 길은 아슬아슬했다. 도로 왼쪽 2∼3m 정도에 러시아와 국경을 가른 철조망과 말뚝이 세워져 있고 바로 오른쪽은 두만강이 흐르는 길이 한참 이어졌다. 포장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두만강이 범람하면 이 길이 끊겼다고 한다. 중국이 그렇게 작은 불모지에 집착하는 건 태평양을 지척에 둔 극동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동해 출해권 확보를 위해 온갖 애를 써왔다. 중국은 ‘차항출해’(借港出海·항구를 빌려 바다로 진출) 전략으로 2014년 러시아의 자루비노항을 개발하기로 했지만 진척이 더디다. 한때 자루비노항과 북한 나선, 훈춘을 아우르는 계획을 제안하기도 하고, 나진항 부두 개발권을 얻기도 했지만 북·중관계 악화로 막혀 있다. 훈춘은 2000년부터 속초∼러시아 자루비노 항로와 연결되기도 했다. 속초∼자루비노는 뱃길이고 이후 훈춘까지는 육로였다. 그러나 러시아 측의 까다로운 통관검사와 통관료 및 터미널 사용료 인상 등으로 삐걱대다 세월호 사건 여파로 2014년 폐쇄됐다.

결국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면 북한 나선 루트에 다시 기대야 하는 처지다. 훈춘에서 나선시로 넘어가는 관문인 취안허 통상구는 과거 한때 하루 차량 통행량이 1000대에 이르고, 나선(나진·선봉)시에서 식당, 상점, 무역업 등으로 머무르는 중국인이 수천명에 이르기도 했었다. 중국이 일찌감치 대북 제재 해제를 자꾸 거론하는 배경에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와 함께 동해 진출로 확보라는 절박함이 섞여 있다. 해산물 등 각종 물류 활성화뿐 아니라 나선 지역 항구를 개발해 지린성과 헤이룽장성 등 북방 지역의 해상무역로를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린성과 훈춘시는 최근 평화무드를 틈타 북한 관광을 집중 활성화하고 있다. 취안허 세관은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북한을 오가는 화물차량도 크게 늘었다. 취안허 세관 옆에는 대규모 종합통관시설이 추가 건설 중이다. 훈춘∼나선 간 철도 구상도 다시 거론된다. 대북 제재만 풀리면 한꺼번에 북한으로 달려갈 태세다.

현지의 한인 사업가는 이런 얘기를 했다. “중국 기업인들은 북한을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면서 사전 준비를 하는데, 우리는 발도 못 붙이는 상황이다. 사업상 너무 불공정한 게임이다.” 왠지 중국에 또다시 뒤통수를 맞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베이징=노석철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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