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손병호] 김정은의 官吏 사용법 기사의 사진
요즘 보수, 진보 매체를 막론하고 자주 다루는 뉴스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시찰 행보다. 시찰 때 그가 쏟아내는 말이 매번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 말 안 듣는 북한 관리들을 솜씨 있게 다루는 모습에 제3자인 남한 사람도 통쾌할 때가 많다.

김정은 시찰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게 비유를 곁들인 ‘버럭’ 화법이다. 그는 지난 20일 묘향산 의료기구 공장을 방문해 “의료기구 공장이 아니라 좋게 말하면 농기계 창구고, 더 정확히는 마구간”이라고 질타했다. 또 “동물들조차 겨울잠을 한 번 자고 깨어나는데 왜 관리들은 몇 년째 빈구호만 외치느냐”고 몰아세웠다. 그러면서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과학교육부를 거론하며 “중앙당 부서들부터 자세가 틀려먹었다”고 비판했다.

김정은 시찰의 또 다른 특징은 중요한 사업은 수시로 되찾아가 변화를 확인한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 18일 백두산 인근 삼지연군을 시찰했는데, 불과 40여일 전에 방문한 곳이다. 처음 갔을 땐 관리들을 다그쳤지만 다시 찾아가선 “그 사이 몰라보게 변모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지난 16일에도 강원도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를 2개월 만에 다시 찾아 공사를 재촉했다.

김정은이 강하게 질책한 사안은 총리가 직접 챙기는 것도 눈에 띈다. 박봉주 내각총리는 지난 7월 김정은이 그 2개월 전 다녀가며 잔소리를 쏟아낸 평안북도를 시찰하며 ‘1호 지적사항’을 점검했다. 김정은은 “온천장 물이 양어장보다 못하다”, “경제지도 책임일꾼들이 덜 돼 먹었다”고 비판했었다.

때로는 관리들을 조사하라고 지시한다. 김정은은 지난 7월 17일 함경북도 일대를 시찰하다 “형식적으로 일한다”며 도당 및 관할 중앙당 인사들을 엄중 문책하고 잘못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벼르고 벼르다 직접 나왔는데, 말이 안 나온다. 더 괘씸한 건 현장에는 안 나오면서 준공식 때는 빠지지 않고 얼굴을 들이미는 뻔뻔스러운 행태”라고 격노했다.

이러한 김정은의 시찰 뉴스를 접하다 국내 상황을 돌아보면 아쉬울 때가 많다. 관리들이 말을 안 들어 규제개혁 회의가 계속 미뤄지고 있고,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부총리는 몇 개월째 엇박자를 내고 있다. 관리들의 집행 의지가 부족하거나 우유부단함 때문에 일자리 창출, 교육 정책, 국민연금 혼선 등이 조기에 교통정리가 되지 않고 계속 표류 중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지도자의 ‘질책 리더십’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말에선 그런 걸 느끼기 어렵다. 간혹 대통령 발언이 들려도 현장이 아니라 청와대 ‘내부 회의’ 때 나온 발언이고, 그마저도 대변인을 통한 전언인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발언이 별 주목을 끌지 못한다. 근래 몇 개월간 가장 그럴싸하게 들린 말이 ‘직을 걸고 임해 달라’는 정도다. 누릴 만큼 누리고 출세할 만큼 출세한 정책실장이나 부총리한테 그 ‘직’이 얼마나 대수로울까 싶지만 말이다.

국가 지도자의 발언은 듣는 해당 관리뿐 아니라 공직사회 전체와 국민의 판단에도 파급이 크다. 대통령 발언과 표현, 어조는 통치 철학이나 의지, 정책 추진 열의를 가늠케 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앞으로는 문 대통령 발언이 좀 세지면 좋겠다. 어조도 단호해지고, 표현이나 용어도 더 튀어야 한다. 기왕이면 현장 발언이 많아야 한다. 때로는 점잖은 모습도 내려놓아야 한다. 정책 추진을 위해서라면 감정이 좀 격해져도 괜찮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4월 외부 행사에 나섰다가 파업 중이던 공공철도 노조원들이 야유를 보내자 노조원들을 쫓아가 거리에서 설전을 벌이고 “국민들을 인질로 삼지 말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결국 그런 의지를 내비쳐 철도노조 파업을 굴복시켰다.

‘주인 눈 두 개가 하인 손 천 개를 대신한다’는 말이 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관리들 손 만 개보다 나을 수 있다. 복지부동하는 관리들을 향한 ‘버럭 문’을 기대해본다.

손병호 정치부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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