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이성규] 재윤이 어머니께 기사의 사진
안녕하세요. 인영이 아빠입니다. 일면식도 없지만 저는 어머니가 낯설지 않습니다. 아픈 아이를 둔 부모라는 공통점 때문일까요. 재윤이와 인영이는 둘 다 3살 때 급성림프구성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한 살 터울인 두 아이는 힘든 치료를 견뎠습니다. 아이들은 참 강하더라고요. 긴 치료기간 동안 수백번, 수천번 바늘로 찔리고 머리가 다 빠지는 항암제 부작용을 겪으면서도 우리에게 웃음을 안겨줬습니다.

며칠 전 인영이는 항암치료 종결을 앞두고 마지막 골수검사를 받았습니다. 허리께 긴 주사바늘을 꽂고 골수액을 빼내는 골수검사는 어른도 참기 힘들 만큼 아프다죠. 그래서 고통을 줄이고 검사 진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수면 진정요법으로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실 문 앞에서 인영이가 무사히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어머니가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 글을 읽었습니다. 재윤이는 완치를 눈앞에 둔 지난해 11월 인영이처럼 수면 진정 골수검사를 받았습니다. 재윤이는 응급처치 장비가 구비된 처치실이 아닌 일반 주사실에서 검사를 받던 중 무호흡 및 심정지가 발생했고, 16시간 만에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대학병원 내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했는데 산소호흡기 하나 없이 마우스 투 마우스로 인공호흡을 했습니다. 6살 아이가 마취전문의도 없는 상황에서 고용량의 수면진정제를 투여 받고 사망한 사실을 놓고 ‘질병에 의한 사망’이라는 병원 측 주장을 도통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한국환자단체협의회 안기종 대표도 “재윤이 사건은 3∼4번의 기회를 놓친 전형적인 예방 가능한 환자안전사고”라고 규정하더군요.

‘3살부터 66번을 입원하며 살려고 발버둥을 쳤는데, 의사선생님 말 엄마 말 잘 들어야 유치원도 가고 태권도도 간다고 해서 죽을힘으로 버티어낸 내 새끼는 왜 온몸에 주사바늘이 꽂힌 채 갈비뼈가 다 부러지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여기에 누워 있나요.’ 어머니가 청원 글에 쓴 이 부분을 읽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가 바라는 것은 단 2가지라고 들었습니다. 병원의 진정어린 사과와 재윤이처럼 중대한 환자안전사고의 경우 병원에 보고의무를 부여하는 환자안전법 개정.

의료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목적의 환자안전법의 다른 이름은 ‘종현이법’입니다. 2010년 9살이던 종현이는 의료진의 어처구니없는 항암제 투약 오류로 사망했습니다. 종현이 역시 백혈병 완치를 눈앞에 둔 상황이었습니다. 종현이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이 법에 따르면 환자안전사고가 발생하면 보건복지부에 보고하도록 돼 있습니다. 하지만 법이 만들어지고 나서도 병원은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망사고 같은 중대 사고는 보고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희생은 종현이 한 명이 아닙니다. 2014년에는 건강했던 초등학교 3학년 예강이가 골수검사를 받던 중 의료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예강이 어머니는 지금도 잘못이 없다는 병원과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재윤이 어머니, 예전 독일에 갔을 때 케테 콜비츠의 조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 어머니가 2차 세계대전 전장에서 죽은 어린 아들을 안고 흐느끼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도 뻣뻣이 굳어 차가워진 재윤이를 두 시간 동안 안고 있으셨죠. 그리고 대통령께 저출산에 아이들을 낳으라고만 하지 말고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하셨죠. 청와대 국민청원은 지난주 3만2000여명의 서명으로 종료됐습니다. 답변 기준인 20만명 동의에는 한참 못 미쳤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대통령이 답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6살 소중한 생명이 왜 죽었는지 알 수 없는, 2차 세계대전보다 못한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합니다. 재윤이는 인영이처럼 엄마 손을 잡고 웃으며 병원을 나왔어야 합니다. 그게 정상적인 사회입니다. 어머니, 저희는 언제쯤 세월호에서 내릴 수 있을까요.

이성규 경제부 차장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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