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선도 <16> “내가 말한 처녀와 결혼 안 하면 내 아들 아니다”

[역경의 열매] 김선도 <16> “내가 말한 처녀와 결혼 안 하면 내 아들 아니다” 기사의 사진
김선도 서울 광림교회 원로목사(왼쪽)가 1958년 감리교신학대학 졸업식에서 박대선 교수와 함께했다.
새벽기도마다 참석했다는 그 처녀는 서울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간호사로 일했던 자매였다. 관인중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당분간 삼촌 집에 와 있다고 했다.

사실 전농감리교회의 두 가정에서 이미 나를 사윗감으로 정해 두고 적극적으로 나오는 상태였다. ‘교인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를 주면 안 되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다른 사람과 만나면 상처받고 교회를 떠날지도 모른다. 이를 어쩌나.’

그러나 부모님은 완고하셨다. 특히 아버지는 아주 강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말한 처녀와 결혼 안 하면 넌 내 아들이 아니다. 다시는 보지 않겠다.” “어떻게 얼굴도 못 본 처녀와 결혼을 합니까.” “오는 20일까지 철원 관인교회로 오너라.”

상황이 이쯤 되니 마음에 내키지도 않은 선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막상 만날 날이 다가오자 지방회에 일이 생기고 말았다. 동대문교회 사경회에 참석해 성경을 가르치게 된 것이다. 책임을 저버릴 순 없고, 아버지 때문에 만남을 뒤로 미룰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급하게 전갈을 보냈다. ‘급하게 사경회에 갈 일이 있어 낮에 볼 수 없으니 밤이나 돼야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을 끝내고 차를 타고 관인교회에 도착했을 땐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처녀는 없었다. ‘뭐야. 이 정도도 기다리지 못하다니.’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돌아서려는데 책상 위에 쪽지가 보였다. ‘아, 오기는 왔구나.’ 쪽지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전도사님, 결혼 문제는 인륜지대사라 했거늘, 가장 중요한 첫 만남을 궁색하게 밤에 만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죄송하지만 낮에 정식으로 만나면 좋겠습니다.”

눈에 들어온 것은 글이 아니라 글씨체였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여인의 품격이 묻어났다. 거침없되 절제된 글씨체, 무엇인가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안정감. 내면에 깊은 안정감을 소유한 사람에게서나 뿜어 나올 것 같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쪽지를 읽고 또 읽었다. 나도 모르는 설렘이 일어났다. ‘아, 이러니 부모님이 강권하셨던 것이구나.’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뭔지 모를 운명의 끈이 내 마음을 당기는 것 같았다. 아직 얼굴도 보지 못했는데 필체의 인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게 해서 내 일생의 반려자 박관순을 만났다. 그녀는 생각했던 것보다 키가 훨씬 컸다. 당시 160㎝를 넘는 처녀가 흔하지 않았는데 얼핏 봐도 170㎝ 가까이 돼 보였다. 얼굴이 하얗고 날씬했다. 짙은 남색 정장을 입고 또각또각 걸어오는 모습이 여리면서도 당당해 보였다. 그때 직감했다. 내게 걸어오는 저 여인이 내 운명의 동반자가 되리라는 것을.

아내는 고등학교 때 성결교회에 다니면서 불같은 성령 체험을 한 믿음의 소유자였다. 말투는 직설적이면서도 정확했다.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은 거였지, 감정을 감추거나 말을 돌리는 일이 없었다.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식견도 갖고 있었다. 한국사, 특히 근현대사를 논할 때는 열정이 묻어났다. 그 때문에 식사 시간이 2∼3시간 걸리는 일이 많았다. 동시에 실존주의적인 고민을 많이 한 철학적인 분위기를 지녔다.

부츠를 신고 종로를 걸어 다니기도 했다. 르네상스 음악실에 온종일 앉아 클래식을 감상하길 좋아한다고도 했다. “사모가 될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어요. 목사님은 화장실에도 안 가는 줄 알았어요.” 여인의 모습에서 순수함이 느껴졌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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