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기독 정신 녹인 三愛로 독립·농촌계몽 꿈 일궈

연세대 삼애캠퍼스서 배민수 목사 50주기 추모예배

[현장] 기독 정신 녹인 三愛로  독립·농촌계몽 꿈 일궈 기사의 사진
1924년 1월 평양 숭실전문학교 시절의 배민수 목사. 일제강점기 지하 독립운동을 전개할 때 배 목사의 암호명은 ‘눈 속의 소나무’ 설송(雪松)이었다. 어떤 역경에도 변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고양=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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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사랑, 농촌 사랑, 노동 사랑의 삼애(三愛)다. 기독교 정신으로 농촌을 계몽해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겠다는 집념의 목회자 고(故) 배민수 목사 50주기 추모예배가 26일 경기도 고양 연세대 삼애캠퍼스 삼애교회에서 열렸다.

“조선반도는 동방의 예루살렘, 아시아의 등불입니다. 수많은 선교사들의 피와 눈물로 시작된 복음, 메시아를 기다리던 백성의 기도, 하나가 되어 만들어진 예배당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주님은 없어지고 일제의 강요 속에 신사참배가 진행됩니다. 저 백성을 도와주소서. 목숨 걸고 얻은 신앙이 무너지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기도로 당신의 사랑으로, 목숨 걸고 얻은 신앙을 지켜 주소서.”

배 목사가 일제 말기인 1938년부터 3년간 미국 전역의 440여 교회를 돌며 1300회 넘게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호소하며 외친 내용이다. 삼애교회 성가대는 이런 내용의 기도문을 포함해 배 목사의 생애를 담은 합창곡을 모아 ‘일산 예배당 이야기’라는 제목의 칸타타를 선보였다.

삼애교회 담임인 연세대 교목실 정미현 목사는 설교를 통해 “배 목사가 해방·독립된 공동체에서 예배드리길 소원하며 눈물과 기도로 세우길 원했던 교회가 바로 이곳”이라고 말했다. 고양 일산동구 중산로에 위치한 5만6000평 규모의 연세대 삼애캠퍼스는 배 목사의 농민운동가 양성 기관인 삼애학원에서 비롯했으며 그의 사후 유족들의 결정으로 연세대에 기증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캠퍼스에는 삼애교회와 배 목사 묘역 및 기념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부활 등 사역을 담은 14장면을 따라 묵상하며 걷는 ‘기도의 길’과 천문대 야구장 축구장 등이 조성돼 있다.

배 목사는 1896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배창근은 대한제국 군인으로 구한말 의병운동에 합류했다. 그의 가족은 미국 북장로교 파송 프레데릭 밀러 선교사를 만나 기독교에 입문했다. 부친은 1908년 일제에 의해 체포돼 경성감옥(서대문형무소의 전신)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교수형 직전 옥에서 사망했다. 열 살 남짓이던 아들 배민수가 형무소에서 들은 부친의 유언은 이렇다. “첫째, 네 자신 잘 돌보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라. 둘째, 어머니를 잘 모셔라. 마지막으로 네가 내 아들이고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우리 조국을 되찾아야 한다.”

배 목사는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해 무장투쟁을 위한 독립운동 지하조직을 결성하고 동지들과 단지혈서맹약을 한다. 1918년 일경에 체포돼 옥살이를 하고 풀려났지만 이듬해 3·1운동 때 만세운동을 하다 다시 붙잡혀 1년6개월 형을 언도받는다.

출옥 후 배 목사는 조만식 선생의 가르침을 좇아 전국 농촌을 돌며 기독교 농촌계몽운동을 본격화한다. 학업도 계속했다. 평양 숭실전문학교 영문과를 나와 평양신학교에 들어갔고 미국으로 유학해 시카고의 멕코믹신학교를 졸업했다.

배 목사는 1933년 귀국해 장로교 총회 농촌부 사무국의 초대 총무가 된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다 1938년 미국으로 건너간다. 프린스턴신학교에 들어가 이승만 박사를 도와 독립운동을 했고 미 전쟁성 소속 한인 통역관을 지내다가 해방 후 미 군정 통역관으로 귀국했다.

한국전쟁 후에는 농촌계몽운동에 전념했다. 토지 문제와 농민 갈등이 심각했던 당시 한국에서 확고한 반공주의 토대 아래 기독교 정신으로 농민문제 해결을 위한 협동조합 운동을 전개했다. 1954년부터 대전에서 기독교농민학원을 운영했다. 고양에 삼애학원을 설립한 직후인 1968년 8월 25일 배 목사는 향년 72세로 별세했다. 배 목사와 그의 부친은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추모예배에 참석해 성찬을 함께한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삼애캠퍼스가 기독교 독립운동과 농촌계몽운동을 알리는 교육의 장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고양=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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