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8월 28일] 산당의 힘

[가정예배 365-8월 28일] 산당의 힘 기사의 사진
찬송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382장(통 432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열왕기하 15장 1∼5절

말씀 : 산당의 힘은 도대체 어떠하기에 신앙이 꽤 좋았다고 하는 왕들도 산당 모시기에 열심이었을까요. 산당의 매력이 무엇이고 하나님은 왜 산당을 제거하지 않은 아사랴 왕을 죽였는지, 그리고 그 산당의 힘은 오늘날 우리 가정과 교회에는 없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산당은 히브리어로 ‘바마하’, 곧 ‘높은 곳’입니다. 가나안 백성들은 산속 높은 곳에서 예배하면 하늘과 제일 가까이 닿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하늘 가까이에 있는 자기들의 신이 자신의 기도에 더 신속하게 응답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원시 신앙 의식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이 산당 문화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와 살면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온 이후 유목민에서 농경생활을 시작해야 했던 유대인들의 과제는 ‘풍년 농사’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다고 믿었던 당시의 이방신 숭배의식에 매료되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일월성신, 바알, 아세라, 몰렉, 밀곰 등 잡다한 우상을 산당에 만들어 놓고 농경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세상적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산당에서의 제사가 피하기 힘든 유혹이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산당을 불쾌하게 여겼습니다.(왕상 15:14, 왕상 22:43) 그렇게 하나님을 잘 믿던 왕, 특히 솔로몬(왕상 11:4∼8)까지 산당에서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후에도 산당을 찾을 정도였으니 크게 화를 내실만 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은 한편으로는 하나님 믿는 신앙을,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축복을 기원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이들의 신앙은 이중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십계명의 제1, 2 계명은 점차 잊혀져가고 말았습니다. 전 국민의 혼합주의 신앙화는 가속화되었습니다. 기복신앙이 유일신 신앙을 대체해 버렸습니다.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아사랴 왕의 죽음은 이스라엘 백성 심판의 예고편이었습니다.

산당 제사는 기복신앙입니다. 물론 우리가 범사에 강건하게 되기를 구하는 것(요삼 1:2) 자체가 비신앙적인 것은 아닙니다. 물질과 명예가 신적 위치를 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국의 샤머니즘은 ‘건강’과 ‘재수(財數)’를 최고의 미덕으로 꼽습니다. 기복신앙의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만일 우리의 신앙이 ‘거룩’과 ‘헌신’, ‘봉사’와 ‘섬김’보다는 자녀의 입신양명과 건강 그리고 사업성공 등 세상의 풍요를 제1의 가치로 둔다면 우리의 앞날도 비극적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왜 기복신앙을 거부해야 할까요. 그것은 다 이방인들이 산당제사에서 구하는 기도와 같기 때문입니다.(마 6:32)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십니다.(마 6:33) ‘산당의 힘’을 의지하지 맙시다. 그런 신앙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보다 이 세상을 더 사랑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복신앙을 극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권문상 목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 교수)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