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건리] 바꿀 수 있는 걸 바꾸는 용기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은 지금 ‘신고’가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보고 있다. 기업의 부실공사나 자동차 결함 등에 대한 내부 제보는 그동안 반(反)부정부패라는 공적 차원에서 제기되던 신고가 기업 활동이라는 사적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내부 신고는 공익적 이유에서 조직의 부정부패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조직, 더 나아가 사회를 투명하게 만드는 불씨가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내부 신고자를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찍어 ‘왕따’시키는 구태가 잔존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사례를 보면 신고했다는 이유로 주거지와 상관없는 곳으로 전보되거나 해고라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었다.

‘밀고자’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미국의 소비자운동가 랠프 네이더가 ‘휘슬 블로어’(whistleblower·심판)라는 단어를 사용하자고 제안했던 사례도 있듯 내부 신고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정도와 시기의 차이가 있겠지만 선진화된 사회에서도 오랜 고민거리였다.

하지만 내부 신고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것이 최근 국제사회의 흐름이다. 특히 영국(Public Interest Disclosure Act·1998년)이나 일본(공익통보자보호법·2004년)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주요국은 신고자 보호·보상 제도를 이미 법제화했다. 우리 정부도 2001년 부패방지법과 2011년 공익신고자 보호법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공공 분야 부패의 신고자뿐만 아니라 기업을 포함한 사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신고한 사람을 보호해주는 프로그램을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공익신고자 보호제도가 도입된 지 7년이 지나면서 제도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 많다. 신고 처리 과정에서 신고자의 신분이 알려져 피해를 입은 사례가 발생하거나, 보호의 범위가 한정돼 어떤 내용을 신고했느냐에 따라 보호 여부가 달라지는 사례 등 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드러난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권익위는 신고자 보호지원 수준을 높이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우선 그동안 보호 대상에서 빠져 있던 공익침해 행위의 신고 범위를 넓히기 위해 대상 법률을 지속적으로 추가하고 있고, 신고자의 신분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 변호사가 대리 신고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신고자에게 인사에서의 불이익 등 손해를 준 회사에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와 함께 앞으로 공익침해 행위에 가담한 사람이라도 이를 반성하고 신고했다면 그의 양심과 용기를 감안해 형벌을 감면하는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나아가 보호나 보상금 등을 통한 내부 신고자 지원뿐만 아니라 이들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배신자가 아닌 ‘공익 기여자’란 명예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다.

정부는 이런 내용의 부패공익신고 활성화와 신고자 보호 강화 방안을 담은 ‘반부패 5개년 종합계획’을 지난 4월 18일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만의 노력으로는 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환경이나 소비자 이익 등 공익과 직결된 분야에서 불법적 행위의 감시 역할을 하는 시민단체들이나 내부 신고자 지원 관련 단체들과의 폭넓은 협업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신고자 보호가 더욱 촘촘해질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신고 때문에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을 때 사회와 조직의 부패 문제를 두려움 없이 신고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는 기도문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기원했다. 공익 신고자에 대한 확실한 보호 장치는 사회 구성원 각자의 이런 용기를 이끌어내는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다.

이건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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