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우상인가 복음인가

사도행전 17장 16∼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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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뭔가 눈에 보여야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역사상 인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종 우상을 만들어왔습니다. 출애굽기 32장 1절 하반부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아론을 부추겨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옛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요즘도 곳곳에서 돼지머리를 앞에 두고 소원을 비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도대체 왜 우상을 만드는 것일까요.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태풍과 홍수, 가뭄, 지진 같은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경험합니다. 또 죽음 앞에서도 무력감을 느낍니다. 부자든 권력자든 인간은 누구나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되면 불안해지고 의지할 것을 찾게 됩니다.

바울은 아덴에 신전과 우상이 가득한 광경을 보고 격분했습니다.(16절) 그의 안에 내주하는 성령께서 그를 격분케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 철학자들과 논쟁했습니다. 그리스에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유명 철학자가 많아 철학이 발달한 곳이었습니다. 18절을 보면 바울은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쟁론했다고 합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은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대의 선이다’라고 하며 신은 존재하지만 신은 인간의 삶에 개입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스토아학파는 인간의 이성을 절대시하면서 범신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라고 말하며 천지의 주재인 하나님을 증거합니다.(22∼23절) 또 바울은 사람이 만든 우상으로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으며 우상에서 돌이켜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29절)

바울은 자신이 다메섹으로 가는 여정에서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됐듯 아덴 사람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전파합니다.(18절) 아덴 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에 솔깃해하며 관심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는 지적 호기심 단계에 그치고 맙니다. 대다수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가진 이성적 사고로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32절)

아덴 사람에게 인간의 이성과 철학 사상은 보이지 않는 우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다시 찾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영생의 기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 발로 차고 맙니다. 인간이 만든 형상인 우상을 섬기는 어리석은 옛 모습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아덴에서 소수의 열매만 거둘 수 있었습니다.(34절)

고린도전서 1장 18절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 왔습니다. 멸망하는 자의 편에 서겠습니까. 아니면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겠습니까. 성경의 증언대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었고 사흘 만에 부활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함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성경은 부활한 예수님이 영광 속에 재림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때 예수님을 조롱하며 우상을 섬긴 모든 사람은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우상과 마음의 우상을 걷어내야 합니다. 오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의 소망으로 삼고 그분만 믿고 의지하며 따라야 합니다. 부활 신앙을 갖고 날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윤회 평화나루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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