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전정희] 울지 마 죽지 마 사랑할거야 기사의 사진
‘3차 항암제 투여가 끝나고 딸은 완전히 녹초가 됐다. 주치의가 강력한 수면 진통제를 놓아주었다. 약에 취해 자다 깨다를 반복하던 딸은 급기야 두 눈의 초점이 흐려진 채 흐느적거리더니 몸을 가누지 못했다. …나는 그대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딸을 부축해서 변기에 앉히고 밖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가느다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노래 대니 보이(danny boy)였다.’

여고 2년생 서연이는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었다. ‘범생이’ 서연이는 총명하고 배려심이 많았다. 교회는 아이를 위해 중보기도를 했다. 학생들도 기도하고 편지로 응원했다. 학교 친구들은 어느 추운 날 무균실 건물 창 밖 정원에 현수막을 내걸었다. ‘서연아 사랑한다 힘내라’ 그리고 한 통의 문자가 친구들로부터 서연에게 전달됐다. ‘서연이 보고 있어. 깜깜한 새벽부터 플래시 켜고 다들 한바탕 난리를 쳤다. 너무 추워서 얼어 죽는 줄 알았어’라고. 서연이는 10여년 전 하나님 품에 안겼다. 서연이 엄마는 투병생활을 하는 서연이를 위한 이웃의 기도에 감사해 ‘울지 마 죽지 마 사랑할거야’라는 책을 남겼다.

‘김인겸이는 19세인 고등학교 2학년생이다. 그는 나를 찾아 자기의 생활을 말한다. 웬일인지 신앙이 점점 식어져 냉랭함을 깨닫게 되고 공연한 괴로움을 느낀다 하였다. …나는 그와 함께 겸손히 기도하였다. 주님의 발 앞에 엎드린 우리는 열정적으로 믿음을 구하였다. …기도하는 중에 인겸이는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양심에 걸리는 바도 다 씻어짐을 느낀다고 말하였다. 오오 주는 나의 힘이시라.’

일제강점기 기독 교사의 모범 방애인(1909∼1933). 그는 정작 열병으로 죽어가면서도 제자들을 염려했다. 그녀의 일기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의 문장으로 가득하다. 그러면서도 문둥병자, 가난한 자, 정신병자 등에게 더 깊은 사랑을 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배어 나온다. 그의 그러한 사랑의 실천은 당시 전북 전주서문교회 배은희 목사가 ‘조선 성자 방애인 소전’으로 남겼다. 황해도 황주가 고향이었던 방애인은 전주 기전여학교 교사였다. “목사님, 이 아이가 밖에서 떨고 있기에 데려 왔습니다”라며 고아 등을 챙기던 그녀는 무리한 헌신으로 몸을 상했던 듯하다. 방학 때도 “내가 하루 늦게 가면 수십명의 학생들에게 얼마나 못할 일인가”라며 어머니의 만류에도 9월 1일 개학 날짜에 맞춰 황주를 떠났다. 그리고 그해 개학식이 학생들과의 마지막 대면이었다.

우리의 삶은 어느 날 갑자기 그 일상이 붕괴된다. 생명을 가진 존재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마음에서, 단 하루 사이에 모든 용기를 잃고, 작은 고통에도 그저 하루라도 빨리 편안하게 하늘나라에 가기만을 소망하게 된 내 모습… 이렇게 아프기 전에, 마음껏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그 당연한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알았어야 했는데….’(2007년 2월 6일 서연이 일기 중)

‘병으로 누워 예배당에 참예하지 못하였다. 기숙사에 누워서 나에게 있는 모든 짐을 생각하고 뜻밖에 괴로움을 느꼈다. 남을 참 마음으로 사랑하지 못하였구나. 아아 나는 불충한 종이다. 눈물 흘림을 깨닫지 못하고 기도하였다.’(1933년 2월 22일 방애인 일기 중)

이 두 그리스도인의 마지막 고백이 ‘사랑과 감사’이다. “사랑하세요 그리고 감사하세요”이다. “단 하루 사이에 모든 용기를 잃었다”는 여고생 서연이의 얘기는 하나님 뜻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한다. 일상의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호칭일 수 있다. 그러나 손끝에 박힌 가시 하나가 당신을 괴롭힐 때 우리가 무심코 찾는 분이 하나님이다. 그의 아들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상의) 신을 찾으라” 하지 않았다. “사랑하라” 했다.

서연이가 부른 ‘대니 보이’는 2절은 이렇다. ‘…그대 고운 목소리를 들으면/내 묻힌 무덤 따뜻하리라/그대 항상 나를 사랑하여주면/그대 올 때까지 나 잘 자리라.’ 오늘도 삶이 고달픈가. 사랑할 일이다. 감사할 일이다.

전정희 논설위원 겸 종교2부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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