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에서] 대치동의 밤 기사의 사진
‘사교육 일번지’ 강남 대치동의 한 중학생 학원에서 최근 이런 일이 있었다. 1교시가 끝나고 휴식시간에 한 학생이 갑자기 교실에 있던 휴대용 소화기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 안전핀을 뽑아 분말가루를 사방에 뿌렸다. 학생들은 밖으로 급히 대피했고 교실은 흰색 분말가루로 온통 범벅이 됐다. 학업 스트레스가 심했던 이 학생은 평소 “소화기를 터뜨리고 싶다”고 주위에 얘기했다고 한다. 결국 극심한 학원 스트레스를 소화기를 뿌리며 해소하려 했던 것이다. 이 학생은 즉각 퇴원 조치됐지만 다른 학생들은 남은 수업을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빈 교실이 없어 20여m 떨어진 학원 소유의 옆 건물로 걸어서 이동했고, 담임 강사는 급히 교재를 프린트해 수업을 진행하는 고육지책을 썼다. 교실은 난장판이 됐고 학생들의 책은 소화기 분말가루에 흠뻑 젖어 볼 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수업을 중단하는데 이런 현실이 역시 대치동스럽다.” 한 학생이 씁쓰레한 표정을 지으며 내뱉은 말이다. 대치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장면이다.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수업은 계속된다는 대치동 학원가의 불문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학원 수업이 종료되는 매일 밤 10시의 대치동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백팩을 멘 학생들은 빌딩에서 쏟아져 나오고 왕복 8차로 메인 도로는 자식들을 태우러 온 학부모들 차량으로 넘쳐난다. 곳곳에 주차단속 CCTV가 즐비하고 수많은 경찰까지 단속에 동원되지만 학부모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로에 차를 세워둔다. 자식들의 ‘명문대 입성’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정도쯤은 감수하겠다는 심산이다.

논밭과 침수지로 가득했던 대치동은 어떻게 아파트촌과 학원가로 성장했을까. 1970년부터 시작된 강남 개발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4대문 안을 포함한 한강 이북 지역에 쏠린 인구를 분산하기 위해 개발된 곳이 강남이다. 강북 의존적인 베드타운 성격을 띠었던 강남이 대변신을 꾀한 것이다. 78년 휘문고와 81년 숙명여고가 강북에서 각각 대치동과 도곡동으로 옮기면서 신흥 명문고로 자리 잡았고, 80년대 후반에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운동권 학생들과 전교조 출신 고학력자들이 학원가에 속속 몰려들었다. 여기에 92년 학원 수강 금지 해제, 94년 수능제도 도입 등이 어우러지면서 대치동 학원가는 급성장했다.

2014년 기준 대치동에는 1056개의 학원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곳에서는 대형 학원, 소규모 보습학원, 재수생 종합학원, 영재학교 입시를 위한 그룹과외, 내신 대비 수업 등 수요에 맞는 강의가 다양하게 이뤄진다. 학원뿐 아니라 사교육을 지원하는 독서실과 스터디카페, 학사, 고시원 등도 다수 포진됐고 최근에는 학원과 연계돼 주변 호텔에 투숙하는 맞춤형 프로그램까지 생겨났다. 대치동에는 40대 부모-10대 자녀로 구성된 가정이 주로 살고 있으며 98년부터 2016년까지 18년간 이러한 현상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40대 인구 전입, 입시를 마감한 20대 인구 전출이 가장 많다. 이에 따라 ‘대전세’(대치동 전세)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은마(아파트)에서 자식 자랑 말고, 미도에서 돈 자랑 말고, 선경에서 권력 자랑 말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마다 바뀌는 복잡다단한 입시 제도는 대치동의 호황에 더욱 불을 지폈다. 정부의 오락가락한 대입 정책이 이 지역의 덩치만 거대하게 키운 꼴이 됐다. 대치동 학원가의 밤이 오늘도 대낮같이 환한 이유다.

김준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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