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박민지] 엄마와 딸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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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자 할머니, 저는 오늘도 엄마에게 짜증을 냈어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 쉽지 않네요. 엄마와 떨어져 지낸 지는 10년쯤 됐어요. 고향은 대전인데 대학에 가면서 객지 생활을 시작했지요. 돌이켜보면 집 떠날 날만 손꼽아 기다렸던 것 같아요. 개강 날짜보다 일찍 대학 기숙사로 가겠다고 했더니 엄마가 싫은 소리를 했어요. 서두른다고요. 생각해보니 엄마는 늘 듣기 싫은 말만 했어요. 아침밥을 거른다고, 밤늦게 통화한다고, 일주일 동안 책 한 권 안 읽었다고…. 기숙사 들어갈 채비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평생 안 올 것도 아닌데 뭐 그리 잔뜩 챙겨 가느냐고 잔소리를 했지요.

그래선지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 설렘은 배가 되었어요. 짐 정리도 끝났고 입주 등록도 마쳤는데 엄마는 당최 떠날 생각을 안 했어요. 괜히 침대 위 이불을 펼쳤다 접었다, 기숙사 매점을 들어갔다 나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안 보이더라고요. “엄마 이제 간다”는 얘기를 차마 못하겠다고 그냥 저 몰래 나갔데요. 저는 엄마가 빨리 가기를 바랐는데 엄마는 작별인사도 못할 만큼 속상했나 보더라고요. 그렇게 엄마와 저는 살가운 말 한 마디 없이 떨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10년이 지났지만 저는 여전히 엄마에게 나쁜 딸이에요. 지금 사는 곳엔 엄마는 한 달에 두 번 올 적도 있어요. 오늘은 이불을 두 채나 들고 오셨어요. 지금은 덥지만 곧 가을 날씨가 될 수도 있다면서요. 전 이걸 어디에 보관하느냐고 또 짜증을 냈어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고, 스트레스를 엄마에게 푸는 것 같아요. 그래 놓고 내일이면 또 엄마에게 이번 주에도 서울 오면 안 되느냐고 떼를 쓸지도 모르겠어요.

할머니, 그래서일까요.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67년 만에 딸들을 만난 할머니 심정에 저는 가까이 가지 못했어요. 1·4 후퇴 때 두 딸을 북쪽 친척 집에 맡겨두고 막내딸만 업고 남쪽으로 왔다고 하셨죠. 그때만 해도 이리 긴 이별일 줄 모르셨겠지요. 한글을 채 떼기도 전에 헤어진 두 딸은 벌써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됐더라고요. 상봉이 끝났다는 안내방송에도 도통 떨어질 줄 모르는 모녀들을 남측 관계자가 억지로 떼어놓는 모습을 보고도 그 심정을 가늠할 수 없었어요. 버스 창문 너머로 엄마 얼굴 한 번 더 보겠다고 까치발을 드는 딸의 모습도 낯설었어요. 전 엄마를 귀찮아했으니까요.

그런데요 할머니, 달리는 버스를 눈물로 붙잡는 딸들 모습을 보다가 순간 이상하게도 제가 겹쳐 보였어요. 너무 달라서일까요. 1초라도 더 엄마를 보고 싶어하던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건 ‘부끄러움’이더군요. 제가 누리고 있는 이 행복이 얼마나 귀한지 모른 채 살아온 것에 대한, 오히려 민망함에 가까운 마음요.

할머니, 이제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아니, 분명 알고는 있었는데 너무 익숙해 잊고 살았던 지점이 조금 선명해졌어요. 이 지면에 실렸던 ‘달나라가 있어서’라는 글을 빌자면 “부모와 자식 사이는 어쩌면 저 광막한 우주 공간에 외로이 빛나고 있는 달이 지구와 맺은 관계와 비슷하다” 같은 사실 말이에요. 저와 엄마는 상호작용을 했어야 해요. 엄마가 저를 대하듯 저도 엄마를 귀히 섬겼어야 했죠. 엄마는 늘 같은 자리에 있을 테니 괜찮다고 여기지 말아야 했어요. 다시 생각해도 참 고약하네요.

제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을, 차마 헤아릴 수 없는 고통 속에 살았을 이들이 13만명이 넘는다는 사실도 저를 더 부끄럽게 만들었어요. 현재 생존자는 5만명뿐이라지요. 사연이 딱하다고 야속한 세월이 봐줄 리는 없었겠지요. 눈물로 지낸 이토록 긴 세월은 한(恨)이 되었을까요. 할머니, 하지만 기약 없는 이별이 아쉬워 뜬눈으로 밤을 새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언제든 자유로이 만날 수 있도록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성사시켜보겠다니까요. 그 방법과 시간에는 협의가 필요하겠지만 너무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할머니, 혹시 67년을 미안한 마음으로 사셨나요. 딸을 둘씩이나 지키지 못했다고, 따뜻한 밥을 지어주지 못했다고, 깨끗한 옷을 입히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타박하셨나요. 얼마나 가슴 치며 자식들을 그려 왔을지 저는 가늠조차 할 수 없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압니다. 이건 할머니 잘못이 아니에요. 그러니 너무 울지 마세요. 할머니, 전 이제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겠어요. 이불이 포근해 잠이 잘 올 것 같다고, 열무김치가 정말 맛있다고 꼭 말하려 합니다. 할머니, 오래 사세요.

박민지 온라인뉴스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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