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를 거부, 신사참배에 저항한 ‘불굴의 신앙’

출이독립/이덕주 지음/신앙과지성사

일제를 거부, 신사참배에 저항한 ‘불굴의 신앙’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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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8일 경성지방법원.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3·1만세운동의 배후로 검거돼 법정에 선 신석구(1875∼1950·사진) 목사에게 검사는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피고는 조선이 독립될 줄로 생각하는가.” “출소 뒤에도 또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짧지만 단호한 답이 법정을 울렸다. “독립은 될 줄로 생각하며 그날까지 헌신할 것이오.” 신석구라는 이름을 대신할 만큼 강렬한 사자성어 ‘출이독립(出以獨立)’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동명의 책은 신앙인들에게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묻는다. 저자인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은퇴교수는 이 책을 “젊은이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소개했다. 그는 “민족과 민족이 충돌하는 세계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가 갈등하는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책”이라면서 “신 목사의 삶은 청년 실업이 만연하는 아픔 속에서도 분단을 딛고 통일시대의 주역이 돼야 할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큰 도전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 목사의 삶은 거부와 저항으로 대변된다. 일제를 거부했고 신사참배에 저항했다.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가자는 권유를 거절하고 공산정권과 맞서다 순교했다. 저항은 신앙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신앙인으로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그였다. 결국 신앙은 그를 저항과 순교의 길로 이끄는 자양분이 됐다.

그도 처음부터 신앙을 가진 건 아니었다. 독실한 유교 신봉자로 유교의 가르침에 자부심을 느꼈고 개인과 민족의 미래가 달렸다고 믿었다. 하지만 고향 친구 김진우를 만난 1906년부터 삶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무려 6개월 동안 신 목사를 설득했다. 마침내 “기독교가 유교를 폐하려 온 것이 아니다”는 깨달음을 얻은 신 목사. 기독교가 강조하는 윤리적 갱신을 통해 국권회복 가능성까지 발견했다. 훗날 검사 앞에서 당당했던 건 신앙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신앙은 애국이었다. “회개와 중생의 체험을 거치면서 참 기독교인이면 참 애국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몸으로 실천하게 되었다.”(29쪽)

1920년 마흔다섯 살이 된 그는 실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다. 손병희 오세창 이승훈 최남선 한용운 등이 ‘감방 동기’들이었다.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해했다. “감옥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던 은혜의 자리였다. 그곳은 ‘폐쇄된 공간’이 아니었다. 몸은 자유롭지 못했지만 마음과 생각은 바깥이나 다를 바 없는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98쪽) 이런 시도 남겼다. “희미한 등불 아래 둘이 마주 앉아서/ 성경 말씀을 나누며 꽃을 즐기네/ 원수라도 옛 친구처럼 대하라는 그 말씀에/ 감옥이라도 내 집 같아 안심이 되네/ 상쾌한 바람 불어 대나무 키우듯/ 담박한 마음은 모래 위에 비친 달빛 같구나/ 밤은 깊어 문과 뜰과 산이 고요하니/ 내 몸이 번잡한 서울에 있음도 잊었도다.”(99쪽)

책 곳곳엔 희망을 노래한 시가 연이어 나와 읽는 재미를 더한다. 감옥은 또 다른 선교지였다. 훗날 그는 “감옥은 ‘더 완전한 목사’가 되기 위한 훈련의 장이었다”고 기억했다.(103쪽)

그를 목사로 성숙시켜준 감옥. 결국 그는 그곳에서 순교한다. 평안남도 용강군 신유리교회에서 시무하던 그는 일제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용강경찰서에 수감돼 있다 광복을 맞았다. 하지만 조국은 분단됐고 북쪽에는 공산정권이 들어섰다. 충북 충주가 고향이었던 그는 월남하자는 권유를 받고도 “양들을 두고 갈 수 없다”며 사역지에 남아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정권에 저항했다. 1946년 3·1절 기념 방송 사건과 이듬해 3월 기독교민주당 비밀결사 사건으로 거듭 투옥됐다. 1949년 4월 진남포에서 반공 비밀결사를 이끌었다는 혐의로 검거돼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일제 강점기 때보다 악랄한 핍박이었다. 1950년 10월 10일, 그는 평양형무소에서 공산군에 의해 총살당했다. 저항의 75년은 이렇게 끝났다. 이제는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할 때다. 신앙의 사표가 사라진 시대, 신 목사의 삶을 엿보는 건 어떨까.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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