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실패박람회의 성공을 바라며 기사의 사진
두 가지 프로젝트가 있다. A는 성공 확률이 100%고 완수하면 20억원 수익을 얻는다. B는 성공 확률 80%에 예상 수익 50억원이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니콜라우스 프랑케는 한 기업체 팀장 20명과 세미나를 하며 어느 프로젝트를 선택하겠는지 물었다. 각자 종이에 적어냈을 때 이 회사 사장은 A, B 선택자가 반반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종이를 한 장씩 펴보니 사장의 기대와 보기 좋게 어긋나 있었다. 전원이 프로젝트 A를 택했다. B를 해내면 훨씬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아무도 20% 실패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았다.

프랑케는 ‘실패문화’의 부재를 지적했다.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 나쁜 것이란 인식이 이 회사는 너무 강했다. 실패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 접착력이 약해 실패한 접착제 기술은 포스트잇을 낳았고, 감자튀김 두께 조절에 실패한 요리사는 포테이토칩을 만들었다. 수제맥주 열풍의 도화선이 된 서울 경리단길 맥주집에는 ‘Fail Ale’이란 맥주가 있다. 엷은 색깔의 대표적 에일 맥주 페일에일(Pale Ale)을 만들려다 실패했는데 잘못 만든 맥주가 나름 맛이 좋아 메뉴에 올렸더니 진짜 페일에일보다 잘 팔리는 효자상품이 됐다.

카산드라 필립스는 200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페일콘(FailCon)이란 기구를 만들었다. 실리콘밸리 벤처인을 모아 실패 경험담을 공유하는 콘퍼런스를 열었다. 그도 스타트업을 했고 여러 번 실패했다.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떳떳이 드러내 함께 방법을 찾자는 기획은 대성공이었다. 아마존처럼 이미 실패를 딛고 성공한 기업이 후원에 나섰다. 이후 4년간 연례 행사가 됐고 독일 일본 브라질 등 13개 국가로 확산됐다.

비영리단체 국경없는공학자회(EWB)는 해마다 ‘실패 보고서’를 내고 있다. 빈곤 퇴치를 위한 기술 개발 프로젝트 중 실패한 것을 모아 분석한다. 이 단체의 ‘실패 매니저’였던 애슐리 굿의 업무는 가장 멋진 실패 사례를 찾아내 전파하는 거였다. 굿은 지금 캐나다에서 페일포워드(Fail Forward)란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기업을 상대로 현명하게 실패하는 문화, 실패에 보상해주는 문화를 어떻게 갖출지 조언한다.

미국 프린스턴대 요하네스 하우쇼퍼 교수는 2016년 학교 홈페이지에 자신의 ‘실패 이력서(CV of Failures)’를 공개했다. 옥스퍼드대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를 거친 화려한 경력의 이면에는 대학원 4곳 낙방, 17차례 연구비 거절, 14차례 논문 퇴짜 등 더 화려한 실패 경험이 있었다. 프로필에 실패를 드러낸 이력서는 크게 회자됐다. 성공을 조명하는 세태에서 실패담은 더 큰 울림을 갖는다.

페일콘은 2013년 이후 열리지 않고 있다. 필립스는 “이제 실리콘밸리에선 실패를 말하는 게 너무 당연해져 콘퍼런스가 필요 없다”며 이를 접었다. 그곳 사람들은 실패를 실패(failure)라 하지 않고 방향전환(pivoting)이라 부른다. 그런 실패는 일찍 할수록 좋아서 ‘페일 패스트(Fail Fast)’란 모토가 생겼고, 채용 면접마다 “어떤 실패를 해 봤는가”란 질문이 빠지지 않는다.

이렇게 공공연히 실패를 말하는 무대가 서울에 마련됐다. 행정안전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다음달 14∼16일 광화문광장에서 ‘2018 실패 박람회’를 연다. ‘실패해도 괜찮아’ ‘다시 보자, 실패’ ‘우리 다시 시작해’ 등의 타이틀로 포럼도 하고 콘서트도 하고 전시회도 연다. 실패와 재도전이란 주제는 페일콘과 다르지 않다.

이런 메시지가 담길 것이다. ①실패한 사람은 용감하다(뭔가 도전해야 실패할 수 있으니). ②실패는 실패할 확률을 줄여준다(실패하지 않았다면 배울 수 없는 게 의외로 많다). 덧붙여 이것이 다뤄지길 기대한다. ③실패는 그 사람만의 책임이 아닐 수 있다. 양극화와 불평등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실패의 구조적 요인을 제공한다. 패자부활과 재도전의 기회는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래야 실패를 감수하는 사회적 역동성이 살아날 수 있다.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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