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강주화] 가해자의 시선 기사의 사진
안희정(53) 전 충남지사에 대한 무죄 선고 판결문을 읽다 고교 시절 배운 김동인(1900∼1951)의 소설 ‘감자’를 떠올렸다. 주인공 복녀는 가난하지만 반듯한 여염집에서 올바르게 자란 처녀였다. 가난에 시달리던 복녀는 요즘으로 치면 공공근로에 해당하는 송충이 잡기 사업에 참여한다. 여기서 감독의 꼬임에 빠져 매음을 하게 되고 결국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다. 국어 선생님은 환경이 인간의 도덕성을 타락시키는 것을 보여주는 우리 문학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감자’의 줄거리를 찬찬히 되짚어 보면 작가의 관점이 가해자의 시선에 가까워 보인다. 복녀 부부의 빈궁을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와 무관하게 그리는데다가 몸을 팔게 된 원인을 제공한 이는 감독임에도 모든 잘못을 복녀에게 돌리기 때문이다.

안 전 지사의 3가지 혐의 중 핵심은 ‘피감독자간음’(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이다. 간음과 추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며 안 전 지사를 고소한 김지은(33)씨는 그의 수행비서였다. 명백한 감독자와 피감독자 관계다. 재판부는 검찰이 기소한 10가지 혐의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가 피해자의 거부 의사와 가해자 위력 행사 등을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해석한 판결로 보인다.

피해자가 간음이라고 주장하는 첫 상황을 보자. 안 전 지사가 지난해 7월 러시아 출장을 갔을 때다. 그는 호텔 객실로 김씨를 불러 “내가 자네를 가져도 되겠는가”라고 물었다. 안 전 지사는 승낙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씨는 여러 차례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고 한다. 이때는 안 전 지사가 지명한 첫 수행비서로 업무를 수행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때였다. 여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이자 자신의 직속상관인 안 전 지사의 물음에 얼마나 더 적극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해야 ‘거부’가 될지 의문이다. 가해자 주장은 거의 받아들이고 피해자 입장은 지나치게 인색하게 반영했다는 느낌이다.

법원은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호소에 얼마나 귀 기울여 왔는가. 1955년 ‘한국의 카사노바’로 불린 박인수가 법정에 섰을 때다. 헌병 대위를 사칭한 그는 1년 남짓 70여명의 여성을 농락하다 혼인빙자간음죄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한다”며 박인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는 그 유명한 얘기다. ‘정숙한 여성’이라거나 ‘건전한 정조’란 말은 남성 입장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평가한 의미다. ‘청바지 성폭행 불가론’은 어떤가. 법원은 2008년 한 성폭행 항소심 재판에서 가해자의 위협에 피해자가 투신을 했는데도 “청바지라면 강제로 벗겼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2013년에 흉기를 들고 아내를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남편에게 강간죄를 적용하는 것으로 판례를 변경했다. 그 전엔 얼마나 많은 여성이 남편들에게 매 맞으며 성폭행을 당하고도 법의 구제를 받지 못했겠는가.

지난 5월부터 ‘홍대 몰카 사건’을 계기로 여성들이 거리로 나섰다. 여성들의 시위는 현행 사법 체계가 남성 중심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근본적인 회의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만약 ‘감자’ 속 감독과 그 작가 김동인이 이 시대 법정으로 소환된다면 어떨까. 작가의 묘사로 보건대 감독은 안 전 지사처럼 위력 행사 없이 서로에 대한 호의로 관계를 갖게 됐다고 주장할 것이다. 안 전 지사 선고 내용은 권력형 성범죄 처벌을 위축시킬 소지가 크다. 현 사법부가 100년 전 일제강점기를 살던 작가의 시선과 비슷해서야 되겠는가. 미국 법원은 1873년 수정헌법 14조를 근거로 투표권을 요구한 여성 수전 브라우넬 앤소니에게 벌금형을 선고했고, 미국 정부는 거의 반세기가 지난 1920년에야 헌법에 여성의 참정권을 명시했다. 대한민국 여성들은 우리 법원이 시대를 뒤쫓는 판결을 하기보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판결을 하길 기다린다.

강주화 문화부 차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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