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선도 <21> 부대 옆 작은교회 재건에 넉 달 월급 쏟아부어

나는 출근하느라 공사일은 아내가… 3남매는 3끼를 칼국수 먹으며 자라

[역경의 열매] 김선도 <21> 부대 옆 작은교회 재건에 넉 달 월급 쏟아부어 기사의 사진
김선도 서울 광림교회 원로목사가 4개월 치 군목 월급을 쏟아 부어 1966년 새로 건축한 대전 영천감리교회. 영천감리교회 제공
내가 군목으로 있던 대전 공군교육기술단 뒤엔 작은 교회가 있었다. 철조망 너머 흙벽돌 건물이었는데 십자가만 없다면 영락없는 상여막이었다. 26㎡(8평)나 될까 싶었다.

‘교회인 것 같은데 예배는 드리는지, 성도들은 있기나 한지.’ 게다가 감리교회였다. 이쯤 되니 안 갈 수 없었다. 부대에서 주일 오전예배를 드리고 달려갔다. 6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데 모두 할머니였다. 담임목사도 없었다.

‘아, 내가 와야겠구나.’ 그렇게 마음먹고는 아예 교회 부근으로 이사를 해버렸다. 머슴이 살던 헛간 옆방을 월세 500원에 얻어 들어갔다. 방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쥐 바퀴벌레 지네가 우글거렸다. 나무를 쪼개 대충 지은 재래식 변소를 썼다. 아내는 묵묵히 내 결정을 따랐다. “약한 교회를 섬기는 일이오.” “….” 그때만 해도 장남 정석과 차남 정운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다. 막내딸 정신은 갓난아기였다. 작은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누우면 사과궤짝 넣을 공간도 없었다.

부대 예배가 끝나면 급하게 지프차를 타고 와서 영천감리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분위기는 극과 극이었다. 조금 전만 해도 비전과 에너지가 넘쳤는데 영천감리교회에선 예순이 넘는 할머니 대여섯 분이 앉아 졸고 있었다. “비전을 가져라”고 외치면 할머니들이 졸다가 “비지떡” 하면서 잠을 깼다.

교회의 형편은 조금씩 좋아졌다. 문제는 예배당이었다. “이 건물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결단을 하고 김동흘 장군을 불러 기공예배를 드렸다. “단장님, 교회 예배당 건축을 좀 도와주십시오. 불도저와 트럭을 좀 빌려 주십시오.” “예, 그렇게 하죠.” 그렇게 동학사 밑에서 사병들과 함께 돌을 날랐다. 비가 오면 웅덩이에 빠진 트럭을 흙탕물을 뒤집어쓰면서 끄집어냈다.

나는 매일 부대로 출근해야 하니 공사에만 매달릴 수 없었다. 고생은 결국 아내 몫이었다. 아내는 수두를 앓는 둘째 정운이를 업고 벽돌을 찍었다.

출근 때 “오늘 교회 기초공사하려면 물을 뿌려야 해요”라고 한마디 툭 던지면, 아내는 멀리 떨어져 있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왔다. 땡볕 아래 물지게를 지고가다 뒤집어쓰기라도 하면 땀인지, 눈물인지, 물인지 범벅이 된 채 주저앉아 하나님께 울면서 하소연했다고 한다.

“하나님, 얼마나 교회를 사랑해야 하나요. 얼마만큼 희생해야 하나요. 하나님, 외상은 없지요. 결코 빚진 채로 계시는 분이 아니지요.” 그렇게 실컷 눈물 콧물 다 쏟고 나면 이것도 사명이라고 순종해야 한다면서 꾸역꾸역 다시 일어나 지게를 날랐다고 한다.

문제는 돈이었다. 넉 달 치 월급을 고스란히 공사비에 쏟아부었다. 당시 가장 싼 곰표 밀가루를 사오면 아내는 그것으로 칼국수를 만들었다. 지금의 김정석 목사, 김정운 박사, 김정신 권사 3남매는 아침 점심 저녁 그 칼국수를 먹으면서 자랐다. 1주일 내내 칼국수를 먹다 보니 콧구멍에서 밀가루 냄새가 날 정도였다.

후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식사를 했는데 하필 칼국수가 나왔다. 그때 내 옆에 계시던 김수환 추기경은 칼국수에 콩가루가 들어가 맛있다면서 잘 드셨다. 하지만 나는 그 시절 먹던 칼국수의 역한 냄새가 올라와 구역질이 났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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