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지호일] 다시, 공화주의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국체(國體)를 언급한 헌법 제1조 1항은 ‘민주’와 ‘공화’의 절묘한 결합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짓누르는 무게 탓이든, 박정희 군사정권 아래의 ‘공화당’이 막연한 기피증을 키운 탓이든 한국 사회에서 공화주의는 화석화된 정신 최급을 받거나 무관심, 반감 속에 자리하고 있다. 마치 질주하는 민주에 기생하는 부속물같이.

동양에서 공화(共和)라는 말이 등장한 건 거의 3000년 전이다. 중국 주나라의 려왕이 폭정을 일삼자 제후들이 왕을 쫓아내고, 대신 집정하던 시기(기원전 841∼828년)를 가리킨다. 사마천은 제후들이 집단 통치를 하던 이때를 공화라고 표현했다.

고대 로마는 기원전 510년 ‘오만왕’ 타르퀴니우스를 추방한 뒤 약 450년간 공화정 체제를 유지했다. ‘공공의 것’을 뜻하는 라틴어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는 이후 공화(republic)의 어원이 됐다.

공화주의는 권력의 독점과 특정세력의 자의적 지배에 저항하는 사고체계다. 견제와 균형, 정치적 평등, 공공선, 그리고 법치 등이 핵심 가치로 꼽힌다. 북한이나 군사정권이 아무리 공화의 껍데기를 써도 끝내 반(反)공화국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스스로 ‘궤멸’이라 부를 만큼 위기를 절감하는 보수 정치세력이 그 출구로 다시 공화주의를 찾고 있다.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은 자신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공화주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절대권력의 출현을 막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앞서 새누리당에서 밀려났던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개혁적 보수를 기치로 “이기면 자기 멋대로 하는 민주주의를 벗어나 공화주의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처럼 보수는 민주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대안으로 공화주의를 내세운다. 법치 위에 서서 사사로이 권력을 휘두른 과거 보수정권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청산이 전제된다면 공화주의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을 테다. 아직은 알맹이 없는 정치적 수사에 그쳐 보이지만.

적폐청산과 촛불혁명을 명분으로 청와대가 권력의 중심이 돼 여당과 내각을 수직적으로 지휘한다는 비판(박상훈 ‘청와대정부’)이 나오기 시작한 현 정부의 오류 교정에도 공화 정신이 유효할 수 있다. 민주와 공화는 간단없는 균형 맞추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김경희 이화여대 교수는 책 ‘공화주의’에서 둘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했다. “민주주의라는 물고기는 공화제라는 물에서만 살 수 있다.”

지호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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