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의료용 대마 합법화 논란…“환자 고통 덜어줘야” vs “오남용 우려” 기사의 사진
현직 의사인 황주연씨가 지난달 27일 경기도 성남의 집에서 난치성 뇌전증을 앓는 아들과 놀이를 하고 있다. 황씨는 뇌전증 치료에 효과적인 대마초 추출 카나비디올(CBD)오일을 국내에서 쓸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성남=민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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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 등에 효과 있다는 CBD오일 아들 치료 위해 미국서 들여온 부부, 세관에 적발되고 검찰 수사 받아…
합법화 기치 내건 국내 협회 출범… 마약류관리법 개정안 국회 계류 중
식약처 “통제 허술, 부작용 생길 수도”


현직 의사인 황주연(44), 최익준(44)씨 부부는 지난해 7월 하루아침에 마약 밀수 사범으로 몰려 검찰 수사를 받았다. 난치성 뇌전증(간질)의 한 유형인 ‘가스토레녹스증후군’을 앓는 아들(7)의 치료를 위해 미국에서 대마초 추출 성분인 ‘카나비디올(CBD)오일’을 인터넷으로 ‘직구’(직접구매)했다가 세관에 적발된 것이다. 미국의 일부 주에선 CBD오일 등 대마 추출물이 건강보조식품으로 편의점 등에서 팔리고 있다. 반면 한국은 마약류관리법상 씨앗과 뿌리, 줄기를 제외한 대마초 부위와 그로부터 뽑은 성분은 모두 마약으로 분류돼 사용(흡연 및 섭취)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황씨의 아들은 하루에도 10여 차례씩 경기(발작)를 일으킨다. 그걸 누그러뜨리기 위해 먹는 항경련제는 독성이 강하다. 하루 종일 멍한 상태가 되거나 몸이 축 늘어진다. 구토와 설사, 자살충동 같은 부작용도 따른다.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를 날마다 지켜보는 부모의 가슴은 찢어진다.

부부는 뇌수술을 포함해 아들을 위해 현대의학이 가능한 모든 치료를 시도했으나 차도를 보지 못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터넷을 뒤졌다. 해외 신경학 논문과 미국뇌전증학회 자료를 검색하다 대마초에서 추출한 천연 성분인 CBD오일이 난치성 뇌전증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논문을 발견했다. 미국 홈쇼핑 사이트에서 CBD오일을 너무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황씨는 처음엔 대마 추출물 제품의 해외 직구가 불법이란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3일 “맨 처음 CBD오일 2병을 구입했는데 별 문제 없이 배송됐고 아이에게 먹였더니 3주 뒤 눈빛이 달라지는 등 효과가 눈에 띄게 나타나 정말 기뻤다”고 했다.

치료받는 병원에서 아이 뇌파검사를 한 결과 실제 많이 호전된 걸로 나타났고 주치의도 놀라며 CBD오일의 복용을 권고했다. 그런데 두 번째 직구 때 세관에 걸렸고 마약 밀수 혐의로 검찰에 수사가 의뢰됐다.

황씨는 “아이 치료를 위해 직구했을 뿐인데 일반 마약범처럼 소변과 머리카락 검사를 받았다”고 했다. ‘CBD오일로 아이 상태가 나아졌다’는 주치의 소견서를 제출하는 등 갖은 노력으로 겨우 기소유예 결정을 받았다.

주문했던 CBD오일은 전부 압수당해 아들에게 먹여 보지도 못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치료제를 눈앞에 두고도 국내법에 가로막혀 더 이상 써 보지 못하는 현실 앞에 부부는 좌절했다.

황씨는 “간절히 원하지만 마약사범으로 몰릴까봐 CBD오일 직구를 주저하는 환자 가족이 적지 않다”며 안타까워했다. 황씨 부부처럼 해외에서 CBD오일 구입을 시도했다가 세관과 수사 당국에 적발돼 사법처리된 사례는 80여건에 달한다.

난치성 뇌전증 아들(24)을 둔 강윤숙(가명·48·경기도 일산)씨는 얼마 전 유튜브 영상에서 미국의 한 아버지가 뇌전증 자녀의 발작 시 CBD오일을 혀 밑에 투여하는 장면을 보고는 더욱 애를 끓이고 있다. 강씨는 “오일 투여 30초 후에 아이가 편안해지는 걸 보고 이런 치료제가 있다는 걸 그동안 몰랐던 게 너무 속상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미국의 지인을 통해 몇 차례 구입을 타진했지만 국내로 들여오지 못하고 있다. 강씨의 아들은 갑자기 경련을 일으켜 지하철 선로에 떨어졌다가 구사일생하는 등 숱한 고비를 넘겼다.

강씨는 “중독성 강한 모르핀이나 코데인 같은 마약도 의료 용도로 쓰이는데 단지 대마에서 추출했다는 이유만으로 금지하는 것은 환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처사”라며 “우리나라에서도 의료용 대마를 합법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강씨는 “범죄자가 되더라도 1%의 희망이 있다면 시도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눈물을 훔쳤다.

황씨 부부와 강씨는 최근 의료용 대마의 합법화를 기치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범한 한국카나비노이드협회의 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협회 창립에는 대한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 대한보건협회 등이 참여해 지지를 보냈다.

올해 초 국회에는 치료 목적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은 경우 대마의 사용을 허용하는 마약류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돼 해당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하지만 대마의 중독성과 오남용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여전해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논란과 진통이 예상된다.

의료용 대마(Medical marijuana)는 미국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법적으로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의료진이 치료 목적으로 추천해 사용하는 대마 관련 성분을 말한다.

대마에는 80가지 이상의 성분(카나비노이드)이 들어 있다. 이 가운데 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THC)과 CBD를 의료나 연구 목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THC는 중독과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걸로 알려져 있다. 대마초의 꽃과 잎에서 주로 추출된다. 반면 CBD는 중독이나 환각 효과는 잘 유발되지 않는다. 대마초의 꽃이 피는 상단부, 잎, 수지(진액)에 함유돼 있다.

의료용 대마는 1996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2017년 현재 29개 주에서 합법화돼 있다. 캐나다도 항암치료 후 메스꺼움이나 에이즈 환자의 식욕부진 등을 해소하기 위한 용도로 2001년 허용했다. 일본은 한국과 유사한 엄벌주의 정책을 취하고 있지만 CBD오일 같은 의료용 대마는 유통되고 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이며 중의사는 의료용 대마를 처방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지난해 11월 약물의존성전문가위원회의 심의와 조사 끝에 의료용 대마가 뇌전증을 비롯한 18개 질환 치료에 효과적이며 중독 위험이 없다는 예비보고서를 냈다. 18개 질환에는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다발성경화증, 불안, 우울, 암 등이 포함됐다.

카나비노이드협회 권용현 회장은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그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용할 수 없어 고통으로 신음하는 환자들에게 대마는 생존의 문제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대마 반입이 불법인 만큼 해외에 비해 연구가 많이 이뤄져 있지 않다. 2013년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의료진이 대마의 THC 성분이 위암세포를 죽인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또 경상대병원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연구진은 CBD 성분이 소아청소년 난치성 뇌전증의 새로운 치료 옵션(방법) 중 하나라고 발표한 바 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신경과 김세희 교수는 “뇌전증 환자의 3분의 1은 약물에 반응하지 않는 난치성이다. 이 경우 기존 항경련제로 발작을 누그러뜨릴 가능성은 5% 미만”이라면서 “이들 난치성 뇌전증 환자에게는 CBD오일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식약처도 의료용 대마를 허용하는 세계적 추세와 국민 요구를 감안해 2015년 19대 국회에서 향정신성의약품에 포함시켜 의사 처방을 통해 쓰일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냈었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반대에 부닥쳐 추진되지 못했다.

근래에 대마 오일을 해외 직구했다가 법망에 걸리는 안타까운 환자 사례가 속출하자 국회가 다시 법 개정에 나섰다. 지난 1월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출한 마약류관리법 개정안이 지난달 2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돼 논의가 임박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식약처는 이와 별도로 CBD오일 등 대마 성분으로 만든 의약품을 자가 치료용으로 수입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단 국내에 대체 치료수단이 없는 뇌전증 등 희귀난치성 질환자에게 한정되며 한국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의 경우 앞으로 정책이 시행되면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 팔리고 있는 대마 성분 의약품을 수입해 쓸 수 있다. 지난 6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첫 CBD오일 정제 의약품(에피디올렉스)도 구입이 가능하다.

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 대표인 강성석 목사는 그러나 “희귀의약품센터에 신청해 최종 약을 접하기 까지는 2개월 넘게 걸린다. 뇌전증의 경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발작하는데 그 사이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필요할 때 의사 처방을 즉시 받아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마초에서 유래된 것이라 해도 의약품으로 허가받지 않은 건강보조식품, 단순 CBD오일, 대마 추출물 등은 여전히 수입과 사용이 금지된다. 희귀난치병이 아니라 알츠하이머병이나 불안, 우울증, 신경통증 질환자들이 치료 목적으로 CBD오일 등을 구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강 목사는 “해외에서 이미 효과를 인정받은 치매나 뇌종양, 통증 등 질환자들도 쓸 수 있도록 전면 합법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전면 합법화 주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의료용 대마 합법화가 세계적 흐름이라 하더라도 아직은 임상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고 사실상 효과를 보는 환자군이 제한적이라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식약처 관계자는 “의약품의 경우 정제기술 등을 통해 엄격히 통제가 이뤄지겠지만 보조식품이나 CBD오일, 추출물 등은 통제가 상대적으로 허술해 오남용 소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관계자도 “의료용 대마가 전면 합법화되면 나중엔 기호용 대마의 허용 목소리도 터져 나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규제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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