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미워하면 얻는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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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죽이도록 미운 당신이 있었고 죽도록 미운 내가 있었다. 그 증오의 기간이 자그마치 5년이었다. 목사는 물론 모든 성도가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도록 부름 받았거늘 한 사람을 온종일 미워하며 지낼 줄이야. 그때 나는 이러고도 사람인가, 이래서야 목사인가 라는 끝도 없는 자괴감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나름 오래 미워해 보면서 세 가지를 경험했다. 첫째는 긍정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미워하면 안 된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자주 듣는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 미워하면 좋은 것이 적어도 하나는 있다. 미워하면 즐겁다. 솔직히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듯 신난다. 이렇게 좋은 걸 내가 왜 빨리 미워하지 않았나 싶다. 시간도 잘 간다. 영화 한 편 보는 시간이 사뿐히 흐른다. 돈 한 푼 안 드니 가성비 갑이다. 이러니 어떻게 안 미워하겠는가.

미워하는 것이 왜 즐거운가.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 상상 속에선 가능하기 때문이다. 차마 어쩌지 못하는 그를 가상세계에서나마 내 마음대로 어쩔 수 있었으니까. 누구는 도피라고 나무랄 테고 마음으로 지은 죄도 죄라고 근엄한 표정으로 꾸짖겠지만 어쩌겠는가. 그렇게라도 안 하면 죽을 판이니. 해서 시편에는 미움과 증오를 토로하고 복수를 간청하는 시가 그리도 많은 게다.

둘째, 미워하면 허탈하다. 허무하기 이를 데 없다. 미움에는 끝이 있기 때문이다.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미워하다가 어느 순간 동력을 상실한 비행기가 급전직하로 추락하듯 현실로 돌아온다. 눈 감은 상상 속 세상과 눈뜬 현실 사이의 괴리는 너무 깊어, 하나님은 하늘에 있고 인간은 땅에 있는 것만큼 멀고도 멀다.

가수 이소라는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고 노래했다. 진정 사랑했기에 이별한 연인은 달라도 뭔가 달라져 있겠지만, 미워한 사람에게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바꾼 것도 바뀐 것도 없다. 만약 미움으로 바뀌거나 바꿀 것이 있다면 나 자신이지 그 누구도 아니다. 바꾼다 해도 망가뜨릴 뿐 좋아지는 법은 없다.

마지막으로 미워하면 아프다. 신나게 미워하다 허탈하게 끝난 다음 내 몸은 두들겨 맞은 듯 안 아픈 곳이 없다. 누가 때린 것도 아닌데 그렇다. 왜 그럴까. 좋은 말만 들려준 장미와 나쁜 말만 들은 장미에 관한 실험을 본 적 있다. 며칠 후 하나는 여전히 아름답고 향기를 내뿜는 데 반해 다른 하나는 시들어 추하게 떨어졌다. 쌀로 한 실험도 있다. 하나는 곰팡이가 슬었고 푸르뎅뎅하다. 다른 것은 윤기가 좔좔 흐른다. 말에서 나오는 기운이 생명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미움도 다르지 않다. 미워하면 악하고 독한 기운이 뿜어 나온다. 그 독기가 향하는 곳은 내가 그토록 미워한 당신이건만 정작 그 독기가 머무는 곳은 내 안이다. 갈 곳도 갈 수도 없다. 내 안을 배회할 뿐. 내 마음속 미움이 원수의 털끝 하나라도 다치게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얼토당토않게 애꿎은 내 몸을 패고 있다. 그때야 알았다. 주님이 왜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는지를. 남을 미워하면 나를 미워하기 때문이다. 나를 미워하지 않고선 누구도 미워할 수 없다. 자신을 미워해야 남을 미워할 수 있다. 죽도록 미워하면 미워하는 내가 죽는다. 미워하다가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맹자는 스스로 더럽힌 연후에라야 남이 나를 더럽힐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깨끗한 물로 세수하고 더러운 물에는 신발을 씻는다. 맹자는 덧붙인다. 집안이나 회사나 국가도 자신 때문에 망한다. 제 스스로 무너졌기에 남이 무너뜨린 것이다.

남을 미워하는 것은 나를 미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워하면 안 되는 거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말은 그래서 하신 게다. 자기를 원수처럼 미워하지 않으면 원수를 미워할 수 없다. 자기를 사랑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원수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면, 하물며 그로부터 상처받은 나랴. 그러니 미워하지 마라. 내가 그를 미워하면 결국 나를 미워하는 것이고 내가 나를 미워하면 그가 좋아하지 않겠는가. 누구 좋으라고 미워하리오. 그렇게 살다 죽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 미워하지 마라, 나만 아프다.

김기현(로고스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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