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노 신앙 계승자와 그들의 발자취] 위그노의 후예들 고난의 ‘사막 집회’ 450년을 잇다

(1) 프랑스 남부 앙뒤즈 집회 현장을 가다

[위그노 신앙 계승자와 그들의 발자취] 위그노의 후예들 고난의 ‘사막 집회’ 450년을 잇다 기사의 사진
위그노의 후손인 프랑스연합개신교회 교인 1만여명이 2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앙뒤즈에서 ‘사막 집회’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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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기억하라.’

위그노 후예들이 한자리에 모여 쓰라린 박해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간구했다. 프랑스연합개신교회는 2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앙뒤즈(Anduze)의 야외 언덕에서 ‘사막 집회’를 열고 자신의 선조들이 겪었던 핍박을 되새기며 하나 됨을 다졌다. 프랑스 전역을 비롯해 영국 독일 벨기에 등 전 세계에서 1만여명이 참석했다. 집회가 열린 곳은 지난 450년간 위그노들이 예배를 드려 온 장소로 당시 저항군으로 활동했던 롤랑이란 인물의 가옥을 개조한 ‘사막 박물관’ 바로 앞이다.

위그노는 16∼17세기 로마가톨릭교회와 절대군주로부터 끔찍한 고난을 겪었던 프랑스 개신교인을 일컫는 말이다. 프랑스 종교개혁자 장 칼뱅의 영향을 받은 위그노들은 당시 로마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거나 직업을 빼앗겼다. 남성은 노예선으로 끌려갔고 여성은 감옥에 갇히는 수난을 당했다. 1572년 8월 24일 성바돌로매 축일에만 프랑스 전역에서 2만명의 위그노가 학살당했다.

사막 집회는 매년 9월 첫 주일에 열린다. 예배 성찬식 위원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 목회자들이 처음 참여해 한국교회와 프랑스교회가 만나는 의미를 더했다. 이날 집회는 인근 콩스탕스 탑에 갇혔던 마리 뒤랑이라는 여성이 37년 8개월 만에 풀려난 지 2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설교를 맡은 소피 젠스 아메드로(오랑주교회 목사) 전 남(南)프랑스 지방 총회장은 로마서 8장 18∼27절을 본문으로 “지금은 전쟁과 사회적 불안, 폭력과 세속화의 물결이 주 안에서 소망을 갖지 못하도록 만드는 시대”라며 “아브라함이 우상숭배의 자리였던 아버지 집을 떠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던 것처럼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자”고 설교했다.

예배는 과거 위그노 양식을 그대로 재현했다. 아메드로 목사와 성찬 담당 목회자 30여명은 400여년 전 위그노 목회자들이 입던 것과 똑같은 모양의 검은색 가운을 착용했다. 아메드로 목사가 말씀을 전한 강대상은 17세기 위그노 목사가 쓰던 낡은 목재 강대상 그대로였다.

당시 위그노 신앙 양식의 특징은 성경 읽기와 시편 찬송이었다. 그들은 로마가톨릭의 갖은 핍박 속에서도 가족이 함께 성경을 읽었고 시편으로 지은 찬송을 침묵 속에 불렀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신자들 역시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신앙을 지킨 선조를 생각하며 선포되는 말씀에 귀를 기울였고 10여 차례 찬송을 힘차게 불렀다. 찬송 중에는 한국교회 신자들도 애창하는 ‘영혼의 햇빛 예수님’(60장) ‘주님께 영광’(16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585장) 등도 불렸다.

예배는 칼뱅이 창안한 순서대로 진행됐다. 주 앞에 나아감, 송영, 참회기도, 죄사함 선포, 성화 말씀 선포, 성경봉독, 설교, 신앙고백(사도신경), 헌금, 광고, 주기도, 축도 순으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예배에 집중했다. 휴대전화를 만지거나 한눈을 파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예배 실황은 오전 11시부터 라디오 전파를 타고 프랑스 전국에 방송됐고 팟캐스트 방송으로도 전해졌다.

드 루박 티에리(45)씨는 자신을 위그노 목사의 후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 예배는 세상을 향해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알리는 모임”이라며 “나의 선조 중엔 노예선에 끌려가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다. 그들의 아픔을 기억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 신자들이 예배에 참석해 너무 기쁘다”며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라고 덧붙였다.

스코틀랜드에 사는 미국인 낸시 겜멜(67)씨는 벨기에 출신 남편과 함께 방문했다. 그는 “나의 선조는 위그노였고 그분들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며 “위그노 후손들이 하나 돼 모였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라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이번 집회 이름은 ‘사막 집회’다. 사막이란 예배의 자유와 처소를 빼앗긴 채 쫓겨 다녔던 위그노들이 예배 모임을 계속하기 위해 모인 은밀한 장소를 말한다. 박해 속에 믿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 그들의 저항을 상징하는 중의적 의미도 담겨 있다. 실제로 수많은 위그노가 도망 중에도 숲속이나 바위산속 등에서 예배를 드렸다. ‘광야 예배’라고도 불렸다. 사막 집회는 1571년이 시초로 1715년엔 사막에서 첫 총회가 조직됐다.

현재 프랑스연합개신교회는 2013년 루터교회와 프랑스개혁교회가 통합해 이뤄진 교단이다. 위그노의 신앙 노선을 따르며 오순절과 침례교, 감리교 등 복음주의교회와는 구별된다. 프랑스연합개신교회 교인은 전체 인구의 2∼3% 규모다.

앙뒤즈(프랑스)=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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