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육아도 경쟁으로 모는 일그러진 사회 기사의 사진
부부가 세 자녀의 손을 잡고 언덕에 서 있다. 사회학자 오찬호는 신작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에서 “경쟁에서 이기는 아이를 기를 것이 아니라 경쟁 없이 누구든 행복하게 살 세상을 만들자”고 말한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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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세대가 과거 “왜 결혼 안 하니”라는 추궁을 받고 결혼을 했다면 요즘 젊은 세대는 “결혼을 왜 하니”라는 친구들의 질문에 답한 뒤 결혼식장에 입장한다. 연애, 취업, 결혼, 출산, 육아…. 이 모든 삶의 과정이 지금 청년들에게는 엄청 버거운 일이 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결혼을 하고 출산한 부부들은 자녀를 ‘보란 듯’ 키우기 위해 애쓴다. 왜 그럴까.

사회학자 오찬호(40)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담은 보고서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을 내놨다. 그는 첫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서 학력 차별주의를 고발하고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에서 혐오와 차별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일상의 사회학자’로 자리매김했다. 새 책에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변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민낯을 실감 나게 소개한다. 저자는 0∼12세 자녀를 둔 다양한 상황의 부모를 인터뷰한다. “진정으로 자녀에게 도움이 되는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아무개는 이렇게 말한다. “썩 물려줄 것도 없는데 교육이라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여러 손해를 감수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육아마저 질 수는 없지 않은가.” 자녀를 키우는 것도 중요한 경쟁의 상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부모가 육아를 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육아박람회에서 비싼 육아용품을 고르고, 인맥을 쌓기 위해 조리원을 고르고, 완벽한 놀이법을 알려주는 육아서를 읽고, 좋다는 교육기관을 쫓아다닌다. 유기농 식재료로 아이에게 음식을 해먹이고, 공동육아를 조직하고, 대안학교를 찾으면서 남들과 구분되기를 갈구하기도 한다.

그는 이런 현실을 성찰 없는 사랑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그는 프롤로그에서 “나부터가 문제인데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이유는 나처럼 많은 사람이 육아조차 경쟁하는 걸 가능케 하는 이 부모라는 갑옷에 답답함을 느낄 거라는 확신 때문”이라고 했다. 11세 딸과 6세 아들을 키우는 저자 역시 큰 아이를 영어학원에 보내고 여러 가지 학습지를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적당한 수준의 사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자녀가 평범한 삶조차 누리기 어렵다는 현실을 잘 알아서라고 한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아이를 몰아가다 보면 아이를 ‘공부만 잘하는 바보’로 만든다고 경고한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 그는 고교생 5명을 앞에 두고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사진 찍으려고 교복까지 입고 왔다”는 엄마들이 나타나 수선을 떨었다. 학생들은 저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었다. 학생부 종합전형을 통해 자녀를 대학에 진학시키려는 학부모들이 경력을 위해 억지로 만든 진로탐방 인턴십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청소년들은 무엇을 배우겠는가.

저자는 “대단한 결심 없이 평범하게 살아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좋은 사회라고 정의한다. 현실을 버틸 아이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버티지 않고도 누구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몫임을 잊지 말자고 한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답답한 마음이 든다.

그만큼 우리의 결혼-출산-육아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여실히 그리기 때문이다. 그는 경쟁적인 육아와 사교육 몰입을 충실히 보고하면서 변화를 위해 ‘시민을 기르는 부모가 돼야 한다’는 개인적 인식 변화를 주문한다. 책은 “당신의 자녀는 잘 자라고 있냐”는 질문으로 마무리된다. 사회적 대안을 개인과 공동체의 숙제로만 남긴 게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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