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김찬희] 심리전쟁 기사의 사진
“이것 봐. 노트로 찍어도 사진이 괜찮잖아. 노트가 기술은 좋아.” 테이블에 앉자마자 한 남성이 맞은편에 앉은 여성 2명에게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줬다. 옆자리에 앉은 다른 남성이 맞장구를 쳤다. “노트가 감성은 없지만 기술은 괜찮지.” 대화가 “역시 감성은 아이폰”이라는 말로 마무리될 즈음 귀동냥을 끝냈다. 애플 아이폰에는 있고,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엔 없는 감성이 뭘까. 한 가지는 명확했다. 두루뭉술하고 아리송하지만, ‘아이폰은 감성’이라는 심리를 대중이 소비하고 있다는 것.

식당 안은 인근 빌딩에서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점심시간에 테이블마다 대략 2, 3번은 회전하는 듯했다. 이 정도면 이익을 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처럼 보였다. 정작 계산대에 서 있던 이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같은 삼계탕도 1만7000원짜리보다 1만5000원짜리를 먹는 손님이 많아졌어요. 찜닭을 주문해서 막걸리나 소주 한잔하는 저녁 손님은 이제 찾기 힘들 정도입니다. 가뜩이나 최저임금이 올라서 힘든데 경기도 나빠지니….” 그는 카드와 영수증을 건네면서 “요즘 저녁장사를 접는 가게들이 속출하고 있어요. ‘주머니 인심’을 보면 경기를 미리 알 수 있는데, 갈수록 장사하기가 힘들어집니다”고 했다.

심리는 생각보다 더 세게, 그리고 더 깊게 경제 전반을 흔든다. 소비, 자영업자·기업의 체감경기, 기업의 투자·고용 등에 넓게 발을 뻗고 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정부 정책과 시장의 믿음을 등지기도 한다. 그래서 경제정책은 섬세해야 한다. 예민한 시장의 흐름과 반응을 예측하고 차단하며 북돋아줘야 할 경제정책의 순서가 조금이라도 뒤섞이면 탈이 난다.

문재인정부는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경제정책의 세 축으로 내세웠다. 세 개의 축이 맞물려 돌아가면 새로운 성장의 길을 찾을 것으로 봤다. 중소기업과 내수가 살아나 ‘대기업·수출 의존증’이라는 고질병도 고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 홀로 과속하고 말았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 인상,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 등이 숨 가쁘게 진행됐다. 이즈음 시장과 경제주체들의 마음에 불안이 싹텄다. 불안은 의심을 먹고 자라나 집단 전체에 불만과 공포를 전염시킨다. 불만과 공포가 끼어들면 ‘시장과의 심리전(心理戰)’은 난전(亂戰)이 된다. 정부와 청와대가 소득주도성장에만 매달린다거나 집착한다는 의심은 제조업 구조조정, 미국발(發) 무역전쟁이라는 변수를 먹이로 덩치를 키웠다. 그리고 차츰 가혹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시장과 경제주체들은 일자리 쇼크, 기업 투자 절벽을 그 징후로 여긴다.

얼마 전 만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개문발차(開門發車·문을 열어둔 채 출발한 자동차) 정부’라며 진한 아쉬움을 표시했다. 김 위원장은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출발하다보니 세 축의 진행속도가 달랐다. 소득주도성장만 100m 달리듯 뛰어나갔다”고 말했다. 이어 “세 축이 같은 속도로 진전돼야 실질적 성과가 만들어진다. 현재 속도를 조절하는 과정에 있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 ‘내수’라는 정부 경제정책의 방향성은 맞는다.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눌 수 있도록 경제 체질과 구조를 바꿔야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을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장의 경제 심리는 ‘바닥’을 치고 있다. 경제지표와 체감경제의 간극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심리전에서 백전백패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더 이상 심리전에서 져서는 안 된다.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라는 프레임에 억울하게 갇혔다는 생각부터 서둘러 버려야 한다. 프레임을 깨려면 프레임을 담대하게 인정하면 된다. ‘과속’을 인정하고 정책을 수정하든지 속도를 조절하든지 해서 심리를 되돌릴 필요가 있다. 주요국이 ‘신(新)산업 찾기’에 전력투구하는데 우리만 소모적 심리전에 빠져서는 미래가 없다. 처해 있는 경제 환경이 그리 여유롭지 않다.

김찬희 경제부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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