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포츠] ‘경기의 일부’라는 오심, 승자도 패자도 상처만 남는다 기사의 사진
한국은 국제대회에서 적잖은 오심 논란에 휘말렸다. 여자 펜싱 신아람이 2012 런던올림픽에서 흐르지 않는 1초로 결승 진출에 실패한 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화뉴시스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이 있지만 오심의 당사자인 선수나 팀은 이 말을 수긍하기 힘들다. 지난달 30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유도 73㎏급 결승이 그런 경우다. 안창림은 일본의 오노 쇼헤이에게 절반패를 당한 후 “억울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상대 위에 선 그는 일본 국가가 연주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역대 국제종합경기대회에서 한국은 오심으로 분루를 삼킨 경우가 적지 않다. 그때마다 항의를 거듭해도 판정이 뒤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포츠계는 오심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비디오 판독을 늘리고, 로봇 심판 도입까지 검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간 오심이 한국 스포츠의 일부가 됐던 순간들을 올림픽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올림픽에서 한국이 가장 잊기 힘든 오심 중 하나는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나왔다. 김동성은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태극기 세리머니를 하던 중 실격으로 판정됐다. 미국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이 실격 판정의 주요 이유로 꼽혔다. 한국은 한때 폐회식 불참을 검토하고,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는 등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4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했던 양태영은 명백한 오심에 대한 항의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금메달을 놓친 경우다. 양태영은 개인종합 평행봉에서 출발점수가 10점인 연기를 했으나 심판진이 9.9점을 주는 바람에 미국의 폴 햄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은 ‘서면으로 항의하라’는 국제체조연맹(FIG)의 말에 허둥대다 이의제기 시점을 놓쳐 시상식까지 모두 진행됐다. 당시 브루노 그란디 FIG 회장이 오심을 인정했으나 CAS는 “항의가 경기 종료 전에 이뤄지지 않아 결과를 뒤집을 수 없다”며 기각했다.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가짜 버저비터’의 희생양이 됐다. 준결승에서 노르웨이와 맞닥뜨린 대표팀은 후반 종료 7초를 남기고 극적인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연장까지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종료 버저 직전 노르웨이의 슛이 결승골로 인정돼 패했다. 경기 종료 시점에 볼이 골라인을 통과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계 영상 등을 통해 확인됐음에도 득점으로 인정됐다. 핸드볼은 농구와 달리 볼이 골라인을 완전히 통과하기 전에 경기가 끝나면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2012 런던올림픽에선 ‘1초 오심’이 있었다. 펜싱 에페 여자 개인전에 출전한 신아람은 4강 연장전에서 독일의 브리타 하이데만과 1초를 남기고 5-5 동점을 이뤘다. 그대로 경기가 끝날 경우 우선권을 가진 신아람의 승리였다. 다급해진 하이데만이 세 차례의 공격을 시도해 신아람이 잘 막았으나 남은 시간은 1초 그대로였다. 신아람은 결국 네 번째 공격을 허용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는 경기 후 “1초가 그렇게 긴 줄 몰랐다”고 허탈해했다. AFP 통신은 신아람의 판정을 올림픽 사상 5대 오심으로 꼽기도 했다.

같은 대회에서 남자 유도 66㎏급에 출전한 조준호가 판정을 번복 당하기도 했다. 8강에서 일본의 에비누마 마사시를 만난 조준호는 처음엔 심판 판정에서 3대 0으로 이겼으나 곧바로 심판이 판정을 번복해 0대 3으로 졌다. 경기를 본 마리우스 비저 국제유도연맹(IJF) 회장이 후안 카를로스 바르코스 심판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눈 직후 판정이 번복돼 뒷말을 남겼다. 판정을 담당한 심판 3명은 외신으로부터 ‘바보 삼총사’라는 비아냥까지 받았다.

아시안게임에선 올림픽만큼 큰 오심은 없었으나 남자 핸드볼 대표팀이 2006 도하아시안게임에서 ‘중동 텃세’로 6연패가 좌절됐다. 1986 서울아시안게임 이후 5연패를 달성한 남자 핸드볼 대표팀은 4강에서 홈팀 카타르에 28대 40으로 패하며 6연패가 좌절됐다. 쿠웨이트 심판 2명이 일방적으로 카타르의 손을 들어준 것이 승부를 갈랐다. 지금은 카타르가 한국의 발목을 번번이 잡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의 경기력이 한수 위였다. 한국은 앞서 카타르 심판 2명이 참가한 쿠웨이트와의 예선에서도 26대 32로 패했었다. 카타르핸드볼협회가 판정에 대한 유감의 뜻을 한국에 전하고 재경기도 수용하겠다는 뜻을 나타냈으나 재경기는 이뤄지지 않았다.

반대로 오심으로 한국이 비판의 중심에 선 적도 있다. 1988 서울올림픽 마지막 날 라이트미들급 결승에 출전한 박시헌은 미국의 떠오르는 복싱 스타 로이 존스 주니어에게 경기 내용에서 밀렸지만 3대 2로 판정승을 거뒀다. 당시 TV 중계화면에 패배를 예상한 박시헌이 자신의 팔이 올라가자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 잡히기도 했다.

외신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판정에 대한 비판이 집중됐다. 한국은 박시헌의 12번째 금메달로 서독을 제치고 종합 4위로 대회를 마무리해 의혹의 눈초리를 받았다. 미국에 금메달 1개 차로 앞서 2위를 달리고 있던 동독이 박시헌에게 유리하도록 심판을 매수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박시헌 개인으로는 오심의 피해자 아닌 피해자가 됐다. 당장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쏟아지는 비판에 은퇴를 선언하고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2012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그때 제 손이 들려지지 않았다면 더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며 “올림픽 이후 악몽 같은 삶을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오심을 줄이기 위해 스포츠계 역시 최신 기술을 도입하며 대응해왔다. 잦은 판정 시비가 제기된 태권도는 2011년부터 전자호구 시스템을 도입했고, 축구와 배드민턴 등에선 비디오 판독 기술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엔 3차원(3D) 레이저 센서와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한 로봇 심판 도입도 검토되고 있다.

2016년 10월 와타나베 모리나리 회장이 취임한 FIG는 2020 도쿄올림픽 체조에서 로봇 심판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FIG는 남자 6개 종목, 여자 4개 종목에 해당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일본 후지쯔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최종 판단은 결국 사람이 한다는 점에서 오심이 완전히 근절되긴 힘들다. 단적으로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오심 논란에 휩싸인 안창림의 판정은 경기를 진행했던 심판은 절반으로 판정하지 않았지만 추후 심판진이 비디오 판독을 한 이후 절반으로 선언했다. 강동영 대한유도회 사무국장은 “비디오 판독이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지만 이 경우는 잘못 사용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