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먹다 살다 죽는 인생

민수기 13장 25절∼14장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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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장 2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불러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라를 세우시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3)는 말씀처럼 복이 모든 나라에 전파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백성의 사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불러내셨으면 하나님이 책임지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늘 먹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먹는 것 때문에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겠다던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습니다. 가나안의 코앞입니다.

여기서 정탐꾼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가나안 사람들에 비해 자신들의 모습은 메뚜기같이 작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제 국민 만들기가 완성됐고 법이 생겼고 끝으로 땅이 생기려는 찰나인데 그들은 이를 쟁취할 힘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싸움의 승부를 떠나 사명감이 없었습니다. 존재 이유를 상실하고 있었습니다. 목표 없이 여기까지 건성건성 따라왔던 것입니다.

이길 수 없다는 보고는 무엇에 대한 반응입니까. 정탐꾼들은 거대한 아낙 자손에 대해 이길 수 없다고 보고했습니다. 아낙 자손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싸워 이겨야 하는 세상 나라의 상징인 네피림의 후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싸워야 할 대상이 나타나자 갑자기 그만 메뚜기가 돼버린 것입니다. 자기들 스스로를 메뚜기라 생각한 것입니다. 도대체 여기까지 와서 왜 메뚜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되돌아갈 수도 없는데 그곳까지 인도한 하나님이 얼마나 당황하실 일입니까. 아브람부터 시작해 이 땅을 받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어떡합니까.

문제는 정탐꾼들의 보고에 대한 군중의 태도입니다. 그들은 “그렇다, 우리는 메뚜기다”라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스스로를 메뚜기라고 한 정탐꾼들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정말로 메뚜기밖에 안 되는 자존감이었습니다.

애굽을 이기고 이적과 기사로 살아 여기까지 온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런 하나님 백성인데 정체감이 메뚜기밖에 안 되는 게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메뚜기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사명 없이 살아가는 이런 세대로는 절대로 가나안을 정복하지 못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입장이었습니다.

그 결과 출애굽 1세대는 광야에서 다 죽을 것(민 14:30)이라는 선고를 내리십니다. 그 말씀대로 됩니다. 엄청난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과 함께 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출애굽 이후 40년을 광야에서 지내게 됩니다. 그냥 살았을 뿐입니다. 먹다 살다 죽었습니다. 그 긴 세월을 광야에서 보내야 하는 벌을 받게 된 이유가 바로 가데스 바네아 정탐꾼 사건입니다.

먹다 살다 죽는 인생은 무엇일까요.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 공동체, 사명을 거부하는 인생입니다. 이처럼 가나안은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사명을 자각하고 하나님을 믿은 사람만이 정복해서 얻어낼 수 있는 땅입니다. 그 땅을 정복해서 빼앗을 영적인 배짱이 있는 사람이라야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방 종교와 섞이지 않고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신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존재 의의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통치 받으며 세상과 섞이지 않고 힘과 돈, 정보가 지배하는 세상을 말씀으로 정복하는 사명을 이뤄야 합니다. 복의 통로가 돼야 합니다. 열방이 주께 돌아오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그 사명을 위해 우리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지금이 바로 가나안을 정복할 순간입니다.

임종기 사관 (동대구구세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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