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선도 <26> 연 40%씩 성장하는 강남으로 교회 이전

성도 급증하는데 주차장 없어 불편… 금식 기도 끝에 대지 매입 후 기공 예배

[역경의 열매] 김선도 <26> 연 40%씩 성장하는 강남으로 교회 이전 기사의 사진
김선도 서울 광림교회 원로목사는 1978년 4월 서울 신사동 배나무 밭에서 기공예배를 드리고 교회 공사를 시작했다. 오른쪽은 임시 예배당으로 사용하던 천막교회.
“1000명으로 가자!” 전도에 박차를 가하자 금세 800명까지 성장했다. 1975년 12월 21일 한국에서 처음으로 ‘총동원 주일’이란 행사를 가졌다. 예배에 1003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교회주변 쌍림동은 쇠퇴 중이었다. 아파트 붐이 일면서 다들 이사했다. 주차장이 없어서 길가에 차를 대면 주차위반 딱지를 끊기 일쑤였다.

‘교회가 꼭 여기에 있어야 하나. 아무리 좌석이 많아도 주차장이 없으면 안 된다. 1년에 40%씩 성장하고 있는 강남으로 가자.’ 그때 이미 충현교회는 강남에 터를 마련해 놓았고 충무로 성결교회도 강남 이전을 결정했다. 강남 이전은 광림교회의 목회비전과 성장이론에 의한 필연적 선택이었다.

77년부터 장로들과 성장하는 교회를 탐방했다. 기도하고 설득하기를 반복해 결국 강남 이전을 확정했다. 그때부터 땅을 보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성모병원 근처였다. 기도하는데 확신이 오지 않았다.

새벽 기도를 마치면 무릎을 꿇고 앉아 어제 본 땅들을 떠올리면서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다. “하나님, 광림교회의 터전으로 인도해 주세요.” 그렇게 돌아다닌 땅이 33군데였다.

34번째로 서울 강남구 신사동 텅 빈 배나무 밭을 찾았다. 아브라함이 바라봤던 요단의 들이 이와 같았을까. 그런데 왠지 마음이 끌렸다. 불현듯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이곳입니까. 이 땅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까. 오, 주님 감사합니다.”

78년 1월 1일, 그 배나무 밭에 엎드렸다. 눈이 수북이 쌓인 들판에 차디찬 겨울바람이 살을 할퀴듯 불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땅을 거룩한 땅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전을 짓기 원합니다. 제가 신을 벗겠나이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20일 금식 기도에 들어갔다. 삼각산기도원과 한얼산기도원에서 기도하며 강단에 섰다. 물만 마시며 1주일을 지내자 된장찌개 만두 냉면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했다. 하루는 새벽 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나님, 제 교만함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제 마음속에 교만이 있었습니다. 제가 부족해서 이 성전을 건축하는 데 방해가 돼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 저를 깨끗케 하여 주시옵소서.”

얼마나 통곡을 했을까. 마음 깊은 곳에서 평화로움이 밀려왔다. 성도들도 나의 변화를 눈치채고 덩달아 영적으로 충만해졌다. 텅 빈 들판에 교회를 짓겠다고 하니 모두 부정적이었지만 차츰 나의 비전에 동화되고 있었다.





“여러분, 저 들판에 세계에서 제일 크고 위대한 감리교회가 올라갈 것입니다. 보십시오. 수많은 사람이 몰려올 것입니다.”

금식 기도 후 대지를 매입했다. 배나무 밭은 7필지로 소유주가 제각각이었다. 어떤 사람은 평당 19만원을, 어떤 사람은 24만원을 달라고 했다. 흥정할 시간이 없었다. 부르는 대로 값을 지불하고 모두 사들였다.

78년 4월 18일 저녁 6시 배나무 밭에서 기공예배를 드렸다. 한쪽에 170평의 천막을 치고 예배처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쌍림동에서 마지막 예배를 드렸다. “여러분, 다음 주일부터는 여기서 예배드리지 않습니다. 이제는 한강을 건너가 예배드립니다.”

이튿날 장로들과 예배당 앞에 있던 법궤를 옮겨 왔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간 것처럼 말이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