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제민] 소득주도성장 뭐가 진짜 문제인가 기사의 사진
구체적인 상황 인식과 괴리됐고, 내수 부족에 대처하는 방안과도 결합 못해
정책 풀어가는 순서도 잘못
과정 복기해 잘못 수정하고 필요하면 사람도 바꿔야
정책 근거는 있는만큼 제대로 하면 야당도 협조를


아무래도 소득주도성장이 문제다. 제1야당 대표는 “한 놈만 패는” 대상으로 소득주도성장을 잡았다. 정부는 정책기조를 유지하겠다면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은 분배를 개선해 소비를 늘림으로써 성장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이 정책은 ‘족보’가 있다. 소비가 뒷받침해 주어야 성장이 가능하다는 아이디어는 19세기 초 인구론으로 유명한 토머스 맬서스가 처음 내놓았다. 그 후 1930년대에 존 케인스가 주장했고, 지금 국제노동기구(ILO)가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런 주장이 나온 배경은 총수요가 부족한 경제에 있다. 맬서스는 1814년 유럽에서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직후의 불황을 보았고, 케인스는 물론 대공황을 경험했다. ILO의 주장은 지난 10여 년간의 ‘대침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맬서스는 부유한 지주층의 소득을 늘려야 성장이 이뤄진다고 했지만, ILO는 가난한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서 ‘임금주도성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한국도 대침체의 끝자락에서 총수요가 부족한 상황이다. 수출의존도가 높아서 내수 주도로 전환할 필요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이후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증가로 그럴 필요는 더 커졌다. 그런 한편 외환위기 후 분배가 크게 악화되었다. 분배를 개선하면 어려운 사람들의 구매력이 향상돼 총수요를 늘림으로써 성장률을 올릴 수 있다. 노동자뿐 아니라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도 어려우니 ILO의 임금주도성장을 수정해서 소득주도성장을 정책기조로 삼을 만하다.

그러면 소득주도성장 정책에서 무엇이 잘못됐나. 우선 구체적인 상황 인식과 결부시키지 못했다. 소비가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총수요가 부족한 상황 하에서 나온 것이다. 맬서스나 케인스의 주장도 19세기 중반 유럽 경제가 회복되고 20세기 후반 대공황을 극복한 뒤 힘을 잃었다. 그런데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이 마치 모든 상황에 타당한 보편적 정책인 것처럼 내세웠다.

총수요와 무관하게 소득분배를 개선하면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가난한 사람이 건강이나 교육에 더 투자를 하게 되고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가 높아져 ‘사회적 자본’이 확충됨으로써 경제 전체의 생산성이 올라간다. 그러나 이런 공급 측 효과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묶기가 어렵다. 분배를 개선하면 성장에도 유리하다는 데 동의하는 대다수 경제학자도 그것이 소득주도성장의 내용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다음 문제는 내수 부족에 직접 대처하는 방안과 결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분배 개선을 통해 소비를 늘리고 그것이 성장을 이끄는 효과는 간접적일 수밖에 없다. 내수 진작을 위해서는 직접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이 필요하다. 노후 사회간접자본 개·보수가 일차적 대상이다. 그것은 세계적으로 대침체 하에서 많은 경제학자가 줄기차게 권고한 정책이다. 한국도 30년 이상 된 노후 사회간접자본이 10%가 넘는다. 그렇게 재정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했으면 통화정책을 긴축할 여지가 생겨서 지금 겪고 있는 집값 문제도 완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하나 문제는 정책을 풀어가는 순서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순서가 잘못되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 현실이다. 최저임금이 그런 경우다. ‘을의 전쟁’이 되지 않게 ‘갑’ 쪽에 먼저 손을 대었어야 하는 것이다. 순서가 잘못되니 경제에 충격이 없을 수 없다. 충격을 줄이기 위해 재정을 투입하다 보니 재정정책의 방향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었다.

순서와 관련된 또 하나 문제는 개혁에 있어서 진짜 새로운 아이디어는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의 바탕이 된 내수 부족과 소득분배 악화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그에 따라 온갖 아이디어가 나와 있다. 예컨대 집값 안정을 위해 보유세를 강화하고 거래세를 낮춰야 한다는 아이디어도 1∼2년 전에 나온 것이 아니다. 소득주도성장을 위해서는 그런 해묵은 숙제부터 해결했어야 했다.

소득주도성장특위에서는 로드맵을 만든다고 한다. 로드맵이라는 용어는 감이 안 좋다. 로드맵은 집권 당시에 이미 가지고 있어서 바로 실행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필요한 것은 지난 1년여 동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복기해 보고 잘못을 고치는 것이다. 제대로 정책을 실행하는 주체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면 사람을 바꾸어야 한다. 한편 야당은 그 내용을 본다면 소득주도성장이 “패기 쉬운 한 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정부는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고 야당은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이제민(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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