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9월 11일] 율법 안에 있는 복음

[가정예배 365-9월 11일] 율법 안에 있는 복음 기사의 사진
찬송 :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202장(통 241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갈라디아서 1장 6∼9절


말씀 : 갈라디아 교인들은 바울에게서 복음을 듣고 난 후부터 영적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 자들이지요. 그런데 그들을 유혹하는 자들 때문에 신앙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바울 사도가 전한 복음에서 무슨 문제라도 발견한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래서 복음에서 이탈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율법과 유대교를 혼동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았다가 주를 속히 떠날 일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바울 사도는 도대체 너희가 어떻게 해서 은혜로 너희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이상한 다른 복음을 따라갈 수 있느냐고 엄히 꾸짖고 있습니다. 은혜를 그토록 강조하는 사도가 이렇게 질책하는 것을 보면 지금 갈라디아 교인들이 구원의 본질적인 문제에 빠져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지요.

여기서 사도는 이들과 대결 구도를 형성하면서도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설명으로 현재 처해 있는 위치를 깨닫게 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이 문제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르신 복음’과 ‘다른 복음’을 철저하게 분리시켜 해결해야 할 일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계율의 형태를 띠고 있는 구약의 율법 안에도 복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백성 된 도리로 지켜야 할 법을 선포하신 것이지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기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한 율법의 말씀을 다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늘 실수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깨닫게 된 것은 자기 자신들이 하나님의 법 앞에서 얼마나 연약하고 죄악 된 자들인가 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성도들도 구원을 받게 된 것은 믿음이요 하나님의 은혜였고, 그들이 율법을 보다 잘 지킬 수 있었을 때는 하나님을 매 순간 의지하고 자기들을 죽일 때입니다.

하지만 유대교는 율법의 문자조항 그 자체를 절대시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유대교가 대두된 것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부터였지요.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바벨론에 망한 이유가 율법의 말씀을 무시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멸망당하지 않으려면 무조건 율법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서 율법의 참된 의도는 저버리고 자기들 마음대로 율법 조항을 많이 만들어냈습니다.

결국 이것 때문에 유대교는 율법이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간접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조항을 문자적으로 많이 지키면 그만큼 더 구원에 가깝다는 식의 이단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 자체가 절대시되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정신이나 의도 같은 것은 전혀 의미를 인정치 않고 퇴색된 유대교의 율법을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도 :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말씀을 주셔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통찰력과 분별력으로 신앙생활에서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이에스더 목사(요나3일영성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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