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길잡이 ‘다락방’ 여든 맞다

한국어판 80주년 기념예배

영성의 길잡이 ‘다락방’ 여든 맞다 기사의 사진
세계 각지에서 온 참석자들이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종교교회에서 ‘한국 다락방 80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마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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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0여개 국가에서 800만 그리스도인의 영적 안내서 역할을 해온 묵상집 ‘다락방(The Upper Room)’이 올해로 한국어 발간 80년을 맞았다. 다락방은 성별 나이 교단 인종 민족을 초월한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묵상하고 삶에서 체험한 신앙 이야기를 손바닥 크기의 책자에 담아 나누는 격월간 묵상집이다.

한국 다락방의 기적

서울 종교교회에서 지난 7일 열린 ‘한국 다락방 80주년 기념 감사예배’엔 세계 각지에서 온 참석자들이 다락방의 역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대한기독교서회 이사장인 박종화 목사는 사도행전 2장 1∼4절 말씀을 본문으로 ‘다락방의 기적’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전했다. 박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 말하고 고백한 것을 글로 써서 나온 것이 다락방”이라며 “에큐메니컬의 원조라 할 다락방 역사는 2000년 전 마가의 다락방, 1930년대 미국 샌안토니오의 다락방, 그리고 서울의 다락방으로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예배엔 필리핀 태국 인도 파키스탄 등 아시아 15개국의 다락방 번역자와 편집자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별도의 세미나 일정을 소화한 뒤 각자 전통의상을 입고 예배에 참석했다. ‘아시아 다락방 대표’를 맡고 있는 정임현 미국 연합감리교회 목사는 “다락방은 신학 언어가 아니라 ‘나는 하나님을 이렇게 경험하고 산다’는 고백을 기록한 것”이라며 “350자의 짧은 고백을 어떻게 잘 정리하고 번역해서 살아있는 신앙 언어로 전달할지 고민하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현장엔 92세의 조경순 권사와 아들 이동준(56)씨와 딸 등 3대 가족이 경기도 여주에서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조 권사는 “다락방은 여러 사람이 자기 생각, 삶을 기록한 것이라 읽는 재미가 있다”며 “다락방 쓰는 재미로 하루를 살아간다”고 말했다. 조 권사는 2005년 당뇨로 쓰러졌을 당시 성경을 필사하면서 건강을 회복했다고 한다.

성경 네 권을 필사해 자녀들에게 나눠준 뒤에 아들의 권유로 한·일 대조판 다락방을 매일 일본어로 필사하고 있다. 아들 이씨는 “1984년부터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다락방을 읽기 시작했다”며 “고통과 역경 가운데 말씀을 삶으로 삭히며 극복한 사람들의 고백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1935년 시작, 3년 뒤 한국에 소개

다락방의 역사는 1930년대 초반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트래비스파크 감리교회 여성들의 기도모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경을 읽고 묵상을 나누던 여성들은 영성생활 안내서의 필요성을 느꼈다. 경제상황 등으로 교단이 주저하자 1935년 4월 평신도와 목회자들이 직접 글을 써서 다락방 창간호를 발행했다. 당시 10만부 정도 발행되던 다락방은 힌두어로 가장 먼저 번역됐고 스페인어와 한글판이 잇달아 나왔다.

한국엔 기독교조선감리회(기독교대한감리회 전신)의 총리사(감독회장)이자 종교교회를 담임했던 양주삼 목사가 소개했다. 양 목사는 임영빈 목사와 함께 번역해 1938년 다락방 한국어판을 첫 발행했다. 일제강점기 ‘평화의 왕’ 같은 표현을 빌미 삼아 일제경찰이 발행을 중단시켰지만 1950년 3월 찰스 사우어 선교사가 발행을 재개했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정간과 복간을 반복하다 1962년부터 대한기독교서회가 다락방 한국어판을 발급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신도연맹은 한·영 대조판 및 한·영·일 대조판을 내고 있다.

현재 33개 언어로 번역, 100여개 나라에서 격월로 300만부 이상 발매되고 있다. 가족 및 소그룹 모임에 공유하기 때문에 매일 800만명 이상 같이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진한 대한기독교서회 사장은 “앞으로 미국 다락방과 협력해 다락방의 디지털화와 판형 및 디자인의 변화를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글=김나래 기자,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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