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중증 암환자 요양병원서 내쫓는 나라… 기사의 사진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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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급여비 노린 ‘사회적 입원’ 의심… 진료비 전액 삭감 다반사
광주·전남 5개월새 400여명 강제퇴원… 암치료 못받아 死地 내몰려
심평원 “우후죽순 요양병원들 환자 마구잡이 유치 탓 재정 축나” 암환자 요양병원 환자등급 최하위
환자들 “사회적 입원 규제 불똥” 반발


3년 전 난소암 3기 진단을 받은 조모(55·전북 익산)씨는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1년 뒤 암이 재발했다. 수술이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극심한 부작용 때문에 집과 병원을 오가며 통원 치료를 받기가 너무 힘겨웠다. 가족들도 24시간 곁에서 그를 보살필 여력이 안됐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조씨는 지난해 3월 전주의 한 암재활 전문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요양병원에서는 면역력을 높이는 여러 보조적 암치료도 받았다. 다니던 대학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몇일씩 외출·외박도 했다. 다행히 요양병원 입원기간 암 크기가 조금 줄었다. 조씨는 “요양병원에서 마음이 많이 안정됐다. 이곳서 관리받지 못했으면 버텨내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1년여가 지난 올해 3월 요양병원으로부터 뜬금없이 퇴원 통보를 받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입원 적정성 심사에서 입원 진료비(건강보험 급여비) ‘통(전액) 삭감’ 대상에 올랐다는 게 이유였다.

요양병원 등 의료기관은 환자 진료 대가인 급여비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하고 심평원이 그 적정성을 평가해서 부정수급 등 부적절한 행위가 적발되면 해당 급여비를 삭감한다. 심평원은 요양병원이 조씨의 입원이 불필요한데도 병원에 오래 머물게 해 건강보험 급여비를 타 내려는 이른바 ‘사회적 입원’으로 판단한 것이다.

환자 진료비를 받을 수 없게 되자 요양병원은 경영상 이유를 들어 조씨의 퇴원을 종용했다. 조씨는 “암이 재발해 치료 중인 데, 왜 삭감 대상에 들었는지 모르겠다”면서 “삭감 기준이 뭔지, 제대로 심사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재심을 신청했지만 결과가 나오기 까지 3개월 정도 걸린다. 조씨는 지난 5월 어쩔 수 없이 병원을 나와야 했다.

오갈 데가 없어진 조씨는 집에서 머물며 힘겨운 투병을 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검사에서 종양 수치가 올라갔고 암이 커져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조씨는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중증 암 환자를 국가기관이 보호해 주진 못할망정 병원 밖으로 내쫓는 행태에 큰 상처를 받았다”며 눈물을 훔쳤다.

폐암 4기인 옥정애(56·여·인천)씨는 이달 초 인천의 모 요양병원 입원이 거절됐다. 옥씨는 암이 뇌로 전이돼 한쪽 얼굴과 팔다리가 마비돼 거동이 불편하다. 집에서 식사를 챙겨 먹거나 화장실 가기조차 힘들자 몇 곳의 요양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며 요양 서비스를 받았다. 옥씨 역시 사회적 입원이 의심돼 진료비 삭감 대상에 포함됐다.

옥씨는 “말기에 가까운 암 환자를 ‘사회적 입원’으로 판단한 근거가 뭐냐”며 “환자 상태를 평가하는 병원도 왜 삭감 대상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암 환자를 사지로 내몰지 말라”며 울분을 토로했다.

최근 암 재활 환자들이 입원 중인 요양병원에서 쫓겨나거나 입원 자체가 거절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심평원이 암 환자들의 입원 진료비를 전액 삭감하는 조치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심평원은 암 환자를 요양병원 입원 환자분류표 7개 등급 가운데 가장 낮은 등급인 ‘신체기능저하군’으로 분류해 “요양병원 입원을 인정할 수 없다”며 입원 진료비를 마구 삭감하고 있다. 암 환자들은 속수무책으로 강제 퇴원당하는 실정이다.

암환자권익협의회 김성주 대표는 10일 “지난 3월쯤부터 최근까지 광주, 전남 지역 20여곳의 암재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던 암 환자 400여명이 심평원의 입원 진료비 삭감으로 퇴원 조치됐다”면서 “지난해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광주, 전남 지역의 요양병원 입원 암 환자가 4600여명인데, 이들의 10% 가까이가 병원 밖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암환자 30여명이 암환자권익협의회를 꾸려 심평원의 부당한 조치에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지난 5일 한국암재활협회와 함께 심평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도 열었다.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암 환자들의 입원 적정성을 평가함에 있어 그 근거나 법 적용에 일관성이 부족하거나 입원 치료가 꼭 필요한 3기 이상 중증 암 환자, 항암 치료 중이거나 체력이 바닥나서 더 이상 방사선·항암치료를 받을 수 없는 환자들도 다수 포함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 만난 강제 퇴원 암 환자 80여명의 25∼30%는 삭감 이유를 몰랐고 심평원은 개인별 명확한 기준도 밝히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암 환자들은 요양병원에서 쫓겨나 재발과 전이에 대한 공포는 물론 수술 및 항암 치료로 인한 각종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의학적 도움을 어느 곳에서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최근 심평원의 조치로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서 강제퇴원한 암 환자 3명은 세상을 떠났다.

암 환자들에 대한 입원 진료비 삭감 조치는 요양병원의 암환자 진료가 왜곡돼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최근 요양병원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굳이 입원이 필요 없는 데도 수익을 위해 경쟁적으로 암환자를 유치, 건강보험 재정 지출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게 심평원의 판단이다.

실제 요양병원 환자분류표 7단계 가운데, 1등급 환자인 ‘의료 최고도’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최하위인 ‘신체기능저하군’ 환자는 증가하는 추세다. 환자 분류표는 의료 최고도, 의료 고도, 의료 중도, 의료 경도, 문제행동군, 인지장애군, 신체기능저하군으로 분류된다. 신체기능저하군은 의료 최고도∼의료 경도에 해당되지 않거나 입원 치료 보다는 요양시설(요양원)이나 외래진료(통원 치료)를 받는 것이 적합한 환자들이 해당된다.

심평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승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런 신체기능저하군에 해당하는 요양병원 입원 환자는 2014년 4만3439명에서 지난해 6만3311명으로 크게 늘었다.

암재활협회 신정섭 대표는 “신체기능저하군의 98% 가량이 암 환자로 추산된다”며 “질병 치료가 아닌 생활·요양을 위해 병원에 들어오는 암 환자는 2%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사회적 입원’에 대한 규제의 불통이 애꿎은 암 환자에 튀었다는 얘기다. 암 환자들은 “부당청구가 의심되면 요양병원을 제대로 관리·감독해야지 암 환자가 왜 피해를 온전히 뒤집어 써야 하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심평원은 이에 대해 “입원 진료비 삭감은 요양병원의 청구 경향, 진료내역, 환자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장기 입원의 경우에 한해 일부 적용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심평원 관계자는 “삭감 대상자들은 이례적으로 지나치게 장기 입원을 했거나 외출·외박을 자주 하거나 일상생활 정도를 평가하는 ADL(Activities of Daily Living·옷 벗고 입기, 세수하기 등 10개 항목의 일상생활수행능력) 검사에서 입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평가된 이들”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장기 입원의 구체적 기준에 대해선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입원 진료비 심사가 자의적 잣대로 이뤄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외출·외박에 대해서도 김성주 대표는 “대학병원에서 정기적인 항암치료를 받으려면 외출과 외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암 환자의 외출·외박 이유를 심평원이 일일이 파악해서 심사에 반영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심평원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2016년 말까지 누적 암 등록 환자는 186만2532명이다. 2016년 한 해에만 27만8175명의 암 환자가 새로 발생했다. 이 같은 추세로 볼 때 올해 7월 말 기준 암 환자 수는 2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암재활협회는 추산하고 있다.

암 환자는 대학병원 등에 입원해 수술 받고 나면 14일쯤 뒤 대개 퇴원하며 항암이나 방사선은 통원 치료를 받는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일부 암 환자들은 요양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계속하지만 대다수는 집이나 공기 좋은 곳에서 홀로 투병하고 있다. 수술이나 항암·방사선 등 표준 암 치료를 끝낸 환자들(암 생존자 혹은 암 경험자로 부름)은 사실상 관리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암 생존자들을 위한 국가 차원의 관리 시스템은 최근에서야 시작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립암센터와 7개 지역암센터에서 암생존자통합지지 시범사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대상자는 겨우 2000여명에 불과하다.

순천향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김은석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수술과 방사선·항암치료 후에 생기는 문제에 대해선 전문적 치료의 접근이 어려워 암 생존자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암 치료 후 재활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암환자권익협의회 김성주 대표는 “암 환자가 안정적으로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주든지 아니면, 지금처럼 암 환자가 요양병원 밖으로 내몰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암재활협회 기평석(경기도 가은요양병원장) 부회장은 아울러 “현재 요양병원 입원 환자분류표는 10여년 전 노인이나 뇌졸중 환자 등에 맞게 만들어진 것으로, 최근 입원이 늘고 있는 암 환자 증상에 맞게 개선하거나 암 환자만의 분류표를 따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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