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선도 <27> 신축 건물 규제로 위기… 새벽마다 “성전 건축” 외쳐

구청장 결재 간발 차이로 극적 허가 “전시에 고사포 방해” 종탑도 풀려

[역경의 열매] 김선도 <27> 신축 건물 규제로 위기… 새벽마다 “성전 건축” 외쳐 기사의 사진
김선도 서울 광림교회 원로목사가 강남에 예배당을 건축 중이던 1978년 4월 임시 천막교회에서 안전모를 쓴 채 설교하고 있다.
서울 쌍림동 교회 매각대금은 신사동 땅값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1976년부터 부흥회를 다니면서 받은 사례비와 적금을 보태 겨우 땅값을 마련했다.

교회가 구입한 1200평 중 550평을 팠다. 그런데 정부에서 예기치 못한 결정을 발표했다. 물가 상승 억제, 건축자재 소비 억제 등을 이유로 강남 일대의 신축 건물 규제에 들어간 것이다. 교회도 1000평 이하만 가능하다고 했다. 2400평 교회를 짓겠다던 우리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게다가 75m 종탑도 세울 수 없었다. 전시에 고사포를 쏠 때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였다.

78년 4월 천막으로 교회를 지어놓고 예배를 드리는데 앞이 캄캄했다. 게다가 파놓은 땅에 물이 차올라 연못처럼 고였다. 돈 문제는 둘째 치고 어떻게든 건축허가를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2400평 예배당 건축, 4300명 좌석 배치’라는 구체적인 비전이 현실이라는 장벽에 부딪혔다.

기도밖에 없었다. 정말 기도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교회 천막에서 잠을 자면서 새벽기도와 철야기도를 드렸다. 4월의 밤이 어찌나 춥던지 이불을 두 겹 세 겹 덮어쓰고도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새벽기도 후 성도들과 함께 교회 주변을 뛰었다. 마치 여리고성을 돌듯 일곱 바퀴씩 돌았다. 내가 앞장서서 “성전 건축, 성전 건축”을 외치면 성도들도 따라서 “성전 건축, 성전 건축”을 외쳤다. 그렇게 함께 외치고 나면 가슴이 후련하게 뚫리는 것 같고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기도 응답은 기적처럼 나타났다. 건축규제 시행령이 발표된 지 3일 후인 6월 29일 저녁 건축허가가 났다. 광림교회 건축허가서는 새로운 법이 아니라 기존 법에 따라 구청장이 간발의 차이로 결재한 마지막 문건이 됐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교회 건축을 직접 지휘하신다는 확신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다음은 교회 종탑이었다. 기도 중에 고성용이라는 중학교 동창이 떠올랐다. 당시 국방부 합동참모부의 국장으로 있었는데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무작정 찾아갔다.

“도와주십시오.” 힘겹게 내뱉었는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어떻게 도와줄까요.” “교회 종탑을 건축하려면 군의 허가를 얻어야 합니다.” “제가 손을 한번 써 보겠습니다.”

그분은 국방부 장관을 만나서 교회 설계도를 펼쳤다. 그리고 한강과의 거리는 얼마나 되며 고사포를 쏘는 데 지장이 될 만한 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조리 있게 설명했다. 문제 하나가 해결되자 희한하게도 실타래처럼 엉킨 다른 문제들이 술술 풀렸다.

현대건설과 건축 계약을 맺고 공사에 들어갔다. 몇 달 동안 방치했던 땅에 연못처럼 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물을 빼니 붕어들이 새하얗게 깔려 있었다. 물고기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누가 고기를 잡아다 넣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잡은 붕어는 인부들과 매운탕을 끓여 먹었다. 광림교회 마크는 물고기 모양에 십자가가 꽂혀 있는 형상이다. 마크는 이때 광경을 보고 착안해 만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턱없이 모자란 건축비였다. 100만원, 1000만원 끊임없이 청구서가 날아왔다. 수억원이 필요했다. 기도 중에 떠오른 얼굴은 신동아그룹 회장 최순영 장로였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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