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선도 <28> 드디어 강남 입당예배, 4000여 좌석이 꽉 차

건축비 고갈·레미콘 파동 등 딛고 세계 제일의 감리교회 비전 성취

[역경의 열매] 김선도 <28> 드디어 강남 입당예배, 4000여 좌석이 꽉 차 기사의 사진
김선도 서울 광림교회 원로목사는 연이은 철골 파동과 레미콘 파동을 극복하고 1979년 12월 서울 신사동 광림교회 건축을 완료했다. 당시 입당예배 모습.
당시 나는 월요일마다 최순영 장로가 경영하던 대한생명과 콘티빵에서 직장예배를 인도했다. 최 장로는 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신학교와 교회 건축하는 일에 힘썼다.

최 장로 내외를 남산 밑에 있는 외교구락부로 초청해 점심을 대접했다. 힘들게 입을 열었다. “장로님, 건축비가 없습니다. 2억원을 좀 빌려 주십시오. 교회 건축하고 이자까지 갚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빌려 주십시오.”

막상 말을 꺼냈지만 최 장로에겐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50평이 1600만원 할 때였다. 게다가 1차 오일쇼크로 기업의 자금 결제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기도해 보겠습니다.” 담보도 없이 내 이름 석 자만 믿고 돈을 빌려 달라는 부탁이었다. 최 장로와 헤어지는데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최 장로에게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목사님, 우선 급한 대로 1억원을 빌려 드리겠습니다.” “아니, 정말입니까. 어떻게 하루도 안 돼 결단하셨습니까.” “저희 집사람이 간밤에 꿈을 꿨는데, 글쎄 목사님이 제3한강교에서 고기를 잡는데 수없이 물고기를 낚더랍니다. 큰 교회가 될 꿈이라며 도와주자고 하네요.” 1억원 수표를 받았다. 동그라미가 그렇게 많은 수표는 평생 처음 봤다.

건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빌린 2억원은 금방 바닥이 나고 말았다. 쏟아부어야 할 돈은 끝도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철골 파동’이 일어났다. 지하철 건설이 한창인 때였기에 나라에서도 철골이 부족해 난리가 났다. 철골 문제를 해결하니 이번에는 ‘레미콘 파동’이 일어났다. 마치 세상이 교회 건축을 막으려 작정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콘크리트를 붓던 날을 잊지 못한다. 당시 나는 체력도 정신도 고갈돼 있었다. 이튿날 3500만원을 입금해야 하는데 더 이상 돈을 끌어올 데가 없었다. 넋이 나간 기분이랄까. 물끄러미 콘크리트를 쏟아붓는 광경을 보며 이런 생각까지 했다. ‘에밀레종을 만들면서 쇳물을 녹일 때 어린애를 던져 넣었다고 하지. 내가 녹아서 이 교회가 세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에는 금식 기도를 하면 정신이 더 맑아졌는데 이번에는 과로가 겹쳐서인지 그만 정신을 잃고 혼절하고 말았다. 그러자 온 교인이 들고일어났다. 담임목사가 기도하다 쓰러졌다고 하니 성도들이 새로운 각오와 의지를 불태웠다. 지하 기도실에서 24시간 연속 기도회가 시작됐다.

1979년 12월 정문과 후문 공사가 완료되고 공정의 99%가 진행됐다. 전체 건축비용이 21억6000만원이 든 공사였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135채를 살 수 있는 거액이었다. 그해 12월 16일 마침내 그토록 기다리던 입당 예배의 날이 밝았다. 성전을 새로 짓기로 결의하고 건축위원회가 출범한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이 큰 공간이 과연 찰 것인가’에 있었다. 예배당을 너무 크게 짓는 것 아니냐고, 그 큰 예배당이 차겠느냐고 부정적인 말들이 난무했다.

모든 우려는 입당예배 때 순식간에 사라졌다. 불가능이 실현된 것이다. 4000여 좌석이 꽉 찼다. 세계 제일의 감리교회가 되어 선교 봉사의 주역이 되자는 우리의 첫 비전이 성취된 것이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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