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손수호] 도서관, 노인복지의 최전선 기사의 사진
지난여름에 한 노인복지관에 들렀다가 적이 놀랐다. 지상 4층짜리 큰 규모인데도 혼잡이 심했다. 3500원을 받는 식당은 줄이 길었고 탁구장, 물리치료실, 서예실도 붐볐다.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은 채 빈 의자에 망연히 앉아 있는 어른도 많았다. 유난스러운 폭염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곳에 출근하는 것이었다. 복지관 관계자는 “어디든 비슷한 현상”이라고 했다.

복지관과 더불어 요즘 노인들이 많이 찾는 명소는 공공도서관이다. 아침 개관 이전에 복도에서 기다린다. 노인들이 먼저 찾는 것은 책이 아니라 신문이다. 직원이 그날 치의 신문을 철하기가 무섭게 들고 간다. 컴퓨터방에서는 헤드폰을 끼고 영화를 많이 본다. 가방에 물통과 간식, 약까지 챙겨 오는 분도 있고, 친구와 도서관에서 만나기도 하면서 오랜 시간 머문다.

몇 분에게 도서관을 찾는 이유를 물었더니 “복지관은 노인들만 모여 있어 싫다”고 했다. 쾌적한 환경에 돈 내지 않고 무시로 출입할 수 있으니 도서관이 최고라는 것이다. 남녀노소가 두루 이용하니 기분이 좋다고도 했다. 국회도서관의 경우 구내식당과 휴게공간이 있고, 조금만 나가면 한강 바람을 쐴 수 있어 인기 만점이란다. 한 70대는 “노인이라고 해서 시간이나 축내는 사람으로 보면 안 된다”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노인들의 도서관 이용은 여러모로 바람직하다. 품격 있는 여가활동으로 제격이다. 왕성한 지적 활동은 정신질환을 줄이는 데도 좋다. 볕이 잘 드는 열람실에 고요히 책 읽는 노인을 보면 어떤 위엄마저 느껴진다. 한 시대를 살아낸 삶의 무게와 경험의 넓이라고나 할까. 노년은 인생의 마감이 아니라 과거와의 여행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임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독서하면서 창문 넘어 도망칠 용기를 쌓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노인은 에너지가 달린다. 책을 앞에 놓고 조는 사람이 많다. 본인도 모르게 몸이 소리를 낸다. 수시로 기침이 나오고, 목청을 뚫어야 한다. 화장실에 자주 가야 하고, 가끔 전화벨도 크게 울린다. 신문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침을 바른다. 이런 것들이 노인의 특성이기는 하지만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이용자에게는 피해를 준다. 젊음이 보상 아니듯 늙음이 허물 아니지 않느냐는 항변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도서관 공간을 재구성해야 한다. 이를테면 노인들이 선호하는 자료를 따로 배치함으로써 자연스레 실버 존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격리나 분리가 아니라 존중이다. 노인과 젊은이 모두를 위한 배려다. 소리를 좀 내도 좋고, 꼬박꼬박 졸아도 눈치 볼 필요 없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침묵은 고통이기에 열람실 옆에 휴게공간을 두어 차를 마시고 담소를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생활에 젠더감수성이 필수적이듯 공간에 실버감수성을 적용하면 최적의 설계가 나올 것이다.

정부는 최근 대규모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시·군·구에 작은 도서관 243개를 추가로 설치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도서관을 생활기반시설로 파악한 관점은 좋지만 도서관도 일정한 규모가 돼야 기능을 발휘한다. 어린이와 노인, 책과 컴퓨터, 동아리 활동과 강연까지 한 곳에서 이뤄질 때 비로소 지역문화의 거점이 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한 도서관마을이 대표적이다. 도서관이 기존의 전문성에서 일상성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사서의 역할을 확장하면 복지의 최전선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덧붙여 제안할 것은 도심 지하철의 유휴공간을 활용하는 일이다. 역무 자동화 이후 생긴 빈자리에 상업 가게만 들이지 말고 노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미자. 어른들이 선호하는 신문과 잡지, 책과 TV, 그리고 염가의 다과만 준비하면 된다. 지하철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노인들에게 도시 사랑방, 혹은 기적의 복지 도서관이 될 것이다. 문화와 복지는 바로 이웃이다.

손수호 (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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