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민세진] 소득주도성장의 바른 이름은? 기사의 사진
언어 자체가 가진 힘이란 게 있다. 그래서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표현한 사람도 있고,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는 것이다.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공자도 명칭과 실체가 일치해야 한다는 정명(正名)을 논했다. 요즘 명칭과 실체가 달라 유난히 고생하는 용어가 있다. 바로 소득주도성장이다.

소득주도성장. 소득을 늘려 성장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 개념의 원조가 국제노동기구가 주창한 임금주도성장이라는데,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비율이 높아 임금 대신 소득을 집어넣어 소득주도성장이 됐다고 한다.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적 실체는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소득이 성장을 견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득이 성장으로 이어지는 고리는 소비다. 사람들이 번 돈을 쓰면 그것이 생산을 자극하고 생산 증가가 곧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하늘에서 만나가 떨어진 것도 아니고 일단은 주어진 소득을 윗돌 빼서 아랫돌 괴듯이 옮겨 일부 계층의 소득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소득 총량에 변화가 없는데 분배 변화만으로 소비 총량을 진작할 수 있는 논거는 저소득층의 소비성향, 즉 소득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고소득층보다 높다는 것이다.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저소득층의 소비성향은 상대적으로 높다. 소득계층을 5구간으로 나누었을 때 소비성향은 연도마다 차이는 있지만 가장 낮은 계층이 100%가 넘고 가장 높은 계층이 60% 안팎일 정도로 차이가 크다. 따라서 같은 소득이라도 저소득층에 분배되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소비될 테니 성장에 기여할 수도 있다. 저소득층 소득 점유율이 올라가면 사회적 형평성을 높일 수 있는데 성장에까지 도움이 된다면 일거양득이다.

따라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명칭과 실체가 맞으려면 저소득층의 소득을 향상하는 방향으로 맞춰졌어야 했다. 그러데 논란의 중심에 있는 최저임금을 보자. 최저임금 인상의 수혜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연구들을 살펴보면 정확한 수치에는 차이가 있지만 중산층 이상이 60%가 넘는다는 결과도 있다. 중산층의 범위가 사람들이 체감하는 것보다 넓은 문제가 있긴 하지만 조준이 잘못된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를 중심으로 지지 세력이 확실한 이유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전체적인 임금 수준이 밀려 올라가기 때문이다.

정책의 수혜를 꼭 저소득층만 받으란 법은 없다. 다만 수혜는 못 받아도 피해는 보지 말아야 하는데 전반적인 인건비 상승이 자영업자, 중소상공인을 압박하고 그 결과 일자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저소득층에서 많은 것이 문제다. 애초에 자영업자가 많아 임금주도가 아닌 소득주도를 하겠다고 한 것인데 임금주도만 강조하게 된 셈이다. 당연히 터져 나오는 불만에 정부는 일자리안정자금으로 대응하고 있다. 돌고 돌아 재정으로 막는 형국이다. 결국 재정으로 해결한다면 정부가 하는 일의 실체에 걸맞은 명칭은 재분배 정책이다. 조세재정연구원에서 내놓은 조세 국제동향을 보면 우리나라는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와 비교했을 때 소득세 면세자 비중이 가장 높고, 일본 독일 뉴질랜드까지 더해 비교했을 때 고소득 납세자 세수 비중도 가장 높았다. 상위 소득자에게는 더 내라는 명분이 없을 정도로 많이 걷는 딱 재분배 정책이다.

재분배 정책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성장 견인까지 기대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저소득층에게 제대로 분배되는 방법에 진력해야 한다. 저소득층 대상 정책 수단으로 지금까지 나온 방안들 중 학문적으로나 실질적으로 가장 지지받는 것이 근로장려세제다. 정부 정책으로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기는 하지만 명칭이 쉽지 않아서인지 내용이 복잡해서인지 정치적으로 충분히 주목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처지다. 사람마다 좋을 대로 해석해 쓰는 개념은 논란만 부추긴다. 정책이 무엇이든 명칭과 실체가 맞게 불러주자. 그래야 방향이 정해지고 중지가 모아진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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