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1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평양 정상회담을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결정적 계기로 만들려면 국제적 지지와 함께 국내에서도 초당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중차대한 민족사적 대의 앞에서 제발 당리당략을 거둬주시기 바랍니다. (남북) 국회 회담의 단초를 여는 기회로 삼아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의 말은 정중했고 절박함도 묻어났다. 하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는 청와대의 방식에선 그런 예의와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예의가 없다”는 말은 자유한국당보다 훨씬 우호적인 바른미래당에서 먼저 나왔다. 손학규 대표는 “어제 방송국에 갔는데 TV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의 방북 초청 기자회견이 나오더라. 사전에 어떤 조율도 없었다. 상당히 놀랐고 이건 기본적으로 예의가 아니다”고 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날 평양 동행을 성사시키기 위해 국회의장단과 여야 대표를 찾아갔다. 순서가 뒤바뀌었다. 초청 발표를 해놓고 설득하러 갈 게 아니라 사전에 협의하러 갔어야 했다. 이런 사후 설득은 실패할 것이다. 야당으로선 청와대의 방식을 이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오만하거나 미숙하거나.

청와대의 ‘불쑥 제안’은 처음이 아니었다. 몇 달 전에도 협치내각 구상을 불쑥 꺼냈다가 야당의 반발을 샀다. 사전에 아무 조율 없이 공론화(公論化)된 협치는 결국 공론(空論)이 됐다. 방북 동행도 똑같은 과정을 밟고 있다. 애초에 야당의 협조를 끌어내기보다 협치와 동행의 명분 선점이 목적이었다면 대단히 오만한 것이고, 제안에 진정성을 담았으니 그 자체로 통하리라 믿었다면 무척 미숙한 것이다. 청와대는 나름대로 사전 협의를 시도했다는 입장인 듯하다. 잘 안돼서 공개적으로 설득하려는 것이라면 이는 단견이다. 야당은 이런 방식을 설득이 아닌 압박으로 해석한다. 적대적 남북 관계를 신뢰 구축으로 풀어가듯이 비판적 정치세력과도 신뢰를 쌓아야 협치로 나아갈 수 있다. 야당에서 “무례하다”거나 “정치공작”이란 말이 나오는 방식은 신뢰를 오히려 허물어뜨린다. 사전 조율은 훨씬 치밀했어야 했고 성과가 없을 땐 양측이 윈윈할 모양새를 찾았어야 했다.

정부는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는 이를 통과시키는 것이 옳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놓쳐선 안 될 기회다. 하지만 비준이 부여할 선언의 지속성에 흠집이 없으려면 여야 합의가 전제돼야 할 것이다. 여권은 반대하는 한국당을 치열하게 설득하라. 끝내 실패할 경우 ‘김관영 해법’이 있다. 선언 지지 결의안을 먼저 채택하고 더 가시적인 비핵화가 이뤄질 때 비준하자는 대안은 합리적이다. 동행과 비준 모두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데 그동안 청와대가 택한 방식은 디테일에 약했다. 명분과 신념이 아니라 일을 해내는 것이 실력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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