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홀대 받는 토종 신의료기술 기사의 사진
“도대체 누구를 위한 규제이고, 무엇을 위한 규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질책이다. 지난달 19일 경기도 성남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의료기기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 때 소아당뇨 환자 정소명군과 어머니 김미영씨 사연을 듣고 보인 반응이다.

보도에 따르면 소명군은 혈당 측정을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 피를 봐야 했다. 김씨는 그런 아들을 위해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피를 뽑지 않아도 되는 자동 혈당측정기를 찾아냈다. 스마트폰과 연동해 혈당 수치를 점검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도 만들었다. 이어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이 기기를 대신 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행위가 의료기기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고발까지 당해야 했다.

문 대통령은 “아픈 아이를 둔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애가 타고 속상했을까 싶다”며 “많은 노력을 기울여 개발한 새 의료기기가 규제의 벽에 가로막혀 활용되지 못한다면 그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잘못된 규정을 고치지 않는 행위도 빨리 청산해야 할 적폐라는 뜻으로 읽혔다.

국민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제도로 인한 피해 사례는 이뿐이 아니다. 최근 2년간 건강보험 진료수가 산정과정에서 역차별 논란과 함께 진퇴양난에 빠진 ‘오픈캐스트’도 그중 하나다. 오픈캐스트는 국내 연구진이 2016년 세계 최초로 산업화에 성공한 개방형 그물망 구조인 신종 깁스를 말한다.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진흥공단 연구개발특수진흥재단 대전테크노파크 등 정부 관계 기관이 2009년부터 연구개발비로 30억원이나 지원해 빛을 보게 된 제품이다.

골절 부상이나 심한 염좌, 인대 손상 등으로 깁스를 해본 사람들은 안다. 가려워도 긁을 수 없는 석고붕대 또는 플라스틱 통 깁스가 얼마나 불편한 존재인가를. 기존 깁스의 이런 단점을 일거에 해소한 것이 오픈캐스트다. 긁기는 물론 필요 시 풀고 샤워와 물놀이까지도 할 수 있어 가히 우리 토종 기술이 일군 최고의 혁신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건강보험 진료수가 산정 및 심사 단계에서 제 대접을 못 받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치료재료전문평가위원회가 개발비는커녕 영업비도 건지지 못할 수준의 보험수가를 매기려 해서다.

오픈캐스트 관계자는 “자기네 나라에서도 제 대접을 못 받는 제품을 해외 시장에서 누가 인정해 주겠느냐”며 “지난해 심평원에서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가를 제시해 보험수가등재신청을 자진 취하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우리나라는 이렇다 할 부존자원이 부족해 과학기술 외에 팔아먹을 것이 딱히 없는 처지다. 그렇다고 세계적 수준의 고급기술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보다 국제 경쟁력이 있는 산업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벌이가 신통치 않으면 가계부를 아무리 잘 써도 소용이 없다. 글로벌 시대 국제 경쟁은 스킨스 골프 게임처럼 1등만이 독식을 하는 구조다. 정부 관계 기관이 앞장서 제2, 제3의 오픈캐스트가 나와서 국내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줄 필요가 있다. 어떻게든 산업적 부가가치를 키워서 국제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개국 평균 245일, 한국은 601일 이상. 하나의 글로벌 신약이 보험약가를 얻기까지 소요되는 심사기간이다. 우리나라는 허가 후 2년 내 등재비율이 61%, 4년 내 등재비율이 74%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가 지난해 5월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국내 (보험)약가제도가 가혹하지 않다면 설명되지 않는 명백한 증거”라며 제시한 수치다. 신종 국산 의료기기의 시장 진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누구보다 정부 관계 기관이 살펴야 할 지점이라 생각된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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