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의 음식이야기] 문화와 교역을 탄생시킨 밀 기사의 사진
세겔 은화
신석기 시대 농경의 시작은 인간 생활을 수렵채취에서 식량 생산으로 바꾸었다. 양과 늑대 같은 짐승을 길들여 기르면서 농업과 목축업을 병행했다. 이때 수렵을 주로 했던 사람들은 초원으로 가서 유목민족이 되었고, 채취를 주로 했던 사람들은 평야지대에서 농사를 지으며 일부 목축을 곁들인 정주민족이 되었다.

어느 문명이나 강 하류를 근거지로 발달했다. 농사짓기 좋은 퇴적층이 형성되고 바다가 가까워서 소금을 구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기원전 5000년쯤부터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하류의 수메르 사람들은 강줄기를 따라 여러 개의 도시국가를 탄생시켰다. 이후 농경의 확대로 잉여농작물이 생겨났다. 잉여는 인류에게 여유를 제공해 문명과 문화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 문화(culture)라는 단어 자체가 경작(cultivation)을 의미하는 ‘culture’에서 유래했다.

또 그간 원시공산주의였던 인간 사회에 최초로 사유제도가 나타났다. 그 뒤 잉여의 차이로 빈부격차가 발생했다. 수메르에선 밀 생산량에 따라 계급도 달라졌다. 계급의 분화를 바탕으로 공동체가 커지면서 대규모 관개시설 건설 등에 필요한 여러 통치수단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관개시설과 농기구의 발달로 농업생산량이 크게 늘어나 수메르 사람들은 잉여농작물을 주변 지역의 다른 필요한 물건과 바꾸기 시작했다. 이렇게 물물교환을 처음으로 시작했던 작물 역시 밀이었다. 밀을 필두로 교역이 시작되었다.

그 뒤 물물교환에서 가치척도의 수단, 곧 화폐 대용으로 처음 쓰인 것도 ‘밀 다발’이었다. 이를 ‘세겔(Shekel)’이라 불렀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선 화폐단위로 세겔을 쓰고 있다. 세겔은 인류 최초의 화폐이자 가장 오래 쓰이고 있는 화폐단위다. 이처럼 밀은 인류 최초로 재배한 작물, 인류 최초의 교환 작물, 인류 최초의 화폐 등 ‘인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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