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속 ‘심판받는 예수’는 나를 비추는 거울

심판대에 선 그리스도/로완 윌리엄스 지음/민경찬·손승우 옮김/비아

복음서 속 ‘심판받는 예수’는 나를 비추는 거울 기사의 사진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 대제사장 가야바의 심문을 받았다. 총독 빌라도에게 재판도 받았다. 하지만 십자가 처형과 이어지는 부활의 강렬함에 예수의 심문 장면은 늘 가려져 있었다. 저자 로완 윌리엄스는 ‘심판대에 선 그리스도’(비아)에서 신약성경 사복음서 속 예수의 심문 장면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믿음의 실체를 마주하게 이끌고 있다.

그는 “예수에 대한 심문은 하나님에 대한 심문인 동시에 우리 자신에 대한 심문”이라며 “심판대에 선 그리스도는 인간과 하나님,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 심문을 뜻한다”고 말한다. 이런 전제로부터 출발, 각각의 복음서가 다루는 심문 장면의 특징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장면을 통해 우리가 복음이라 믿었던 것들을 전복시켜 버린다.

가령 그는 마가복음 내내 자신의 정체와 사명을 숨겨왔던 예수가 가장 무기력하고 약해진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음에 주목한다. ‘나는 곧 나다’(출 3:14)는 말씀을 고리 삼아 우리가 하나님의 초월성을 우리 생각대로 이해하고 믿어왔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반면 마태복음의 예수는 마가복음에서와 달리 심문하는 가야바에게 ‘그것은 너의 말이다’라는 답으로 심문하는 자를 심문받는 자로 되돌린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의 신앙 언어가 어떻게 오용되고 있는지, 진정한 하나님의 지혜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들려준다.

마태, 마가뿐 아니라 누가복음, 요한복음에서의 심문 장면에서 저자가 포착해내 우리에게 들려주는 질문들은 섬세하면서도 단단하고 묵직하다. 복음서뿐 아니라 카잔차키스의 ‘수난’과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 등 소설 속 예수의 이야기도 읽어내는데 이 또한 하나같이 매혹적이다.

저자는 2002년부터 11년간 세계 성공회 수장인 캔터베리 대주교를 지냈고 지금은 케임브리지대 모들린칼리지 학장을 맡고 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가 왜 ‘신학자들의 안내자’로 불리는지 짐작이 간다. 기독교 신앙에 이르는 길이 하나의 직선 도로가 아니라 숲길과 바닷길, 때론 사막과 광야를 지나 마침내 본향에 다다르는 풍성한 여정임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신의 강연을 풀어 소개했던 기존 출간서들과 달리 학자이자 주교로서 자기만의 결을 오롯이 살려 써내려간 책이다. 평소 그의 글을 좋아했던 독자들에겐 저자 본연의 영성과 감성, 지성이 어우러진 그의 면모를 제대로 만나볼 기회다.

김나래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