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신하는 백성 버리고 도망가고 그들이 버린 옷 입은 평민은 춤춘다 기사의 사진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갤러리룩스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조습 작가. 권현구 기자
전란으로 궁은 불탔다. 왕과 신하는 도망갔다. 그들이 버리고 간 붉은 곤룡포와 푸른 조복을 주워 입고 각설이들이 질펀하게 춤판을 벌인다. 그 표정이 희화적이어서 백성을 지켜주지 못하고 줄행랑친 통치자들을 조롱하는 듯하다.

작가 조습(42)의 사진 작품 속 연출 장면은 그런 역사적 상황을 상상하게 한다. 낮이 아닌 야간에 촬영함으로써 조명을 받은 인물들의 익살성이 도드라져 보여 더욱 극적인 효과가 난다. 이런 일련의 작품을 가지고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갤러리룩스에서 개인전 ‘광光’전을 갖고 있는 작가를 최근 만났다.

“작품 하나 하려면 의상비만 800만∼900만원이 들어요. 곤룡포만 해도 명품 아르마니 슈트 가격인데, 사자마자 찢고, 거기에 덕지덕지 색칠까지 하니….”

그는 상황을 더 희극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의상을 구입하자마자 못쓰게 만든다며 웃었다.

조 작가는 사극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형식을 빌려와 특정 장면을 연출해 사진을 찍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명 ‘메이킹 포토’다. 서너 명의 등장인물 속에는 꼭 작가가 끼어있다.

“가장 좋은 희극은 자기 비하입니다. 제가 등장해 자기 비하를 해야 상황이 주는 폭력적인 느낌이 거세될 수 있어요.”

사진은 책임지지 못하는 권력을 비판하지만, 각설이들이 대변하는 민중의 모습 또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양반들이 하듯 술상을 차려놓고 가야금을 연주하며 춤판을 벌인다. 사진의 문맥으로 보자면 통치자도 나라를 나라답게 이끌지 못했지만, 민중 역시 세상을 바꾸는 혁명적 주체로서의 위상을 갖지 못한다.

경원대(현 가천대) 미대 출신인 조 작가는 회화를 전공했으나 사진으로 돌아섰다. 2002년 발표한 사진 작품 ‘습이를 살려내라’로 시쳇말로 떴다. 1987년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의 마지막 순간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작품 속에선 작가 자신이 친구의 품에 쓰러져 있다. 또 2005년 작품 ‘물고문’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차용했다. 사진 속에서 피해자로 등장해 고통스럽게 물고문 당하는 작가 자신의 뒤로 ‘이태리타월’로 때를 밀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렇듯 현대사의 사건을 패러디하던 작가는 5년 전부터 사극 형식의 작품을 찍어 오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민중을 향한 그의 시선은 이중적이다. 남이 고문을 당하거나 말거나 자신의 때를 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민중은 무조건 위대하다는 식의 도그마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실제 내가 느낀 민중의 정서는 출세지향적이었고, 그것 때문에 군부독재를 지지하기도 했다. 그런 불편한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20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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