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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한기영] ‘합의형 지방분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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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제는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는 시험과 도전의 역사였다. 책임을 동반하는 다양한 권리의 확대를 통해 발전해 왔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때보다 진정한 지방분권에 대한 요구가 강하다. 지방분권이 갖고 있는 매력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은 1932년 미국 연방 대법원 판사 브렌다이즈의 ‘민주주의 실험실로서의 연방제’가 아닐까 한다. 미 연방제의 큰 장점은 강력한 자치 권한을 바탕으로 지역 고유의 어젠다를 접목한 정책 수립 및 시행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당시 미 연방정부는 대공황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문제 해소를 위해 중앙 주도 방식의 대규모 뉴딜정책을 추진했다. 대공황으로 무너진 미국 경제는 약 6년 동안 추진된 뉴딜정책에 의해 회생하게 됐다. 뉴딜정책은 아직까지도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정책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오늘날 대부분의 복지정책도 뉴딜정책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이런 성공 스토리의 핵심 이면에는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뉴딜정책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열쇠는 연방이 사회재건정책을 주도해서가 아니라 전문화된 지방분권제도가 정책 추진의 굳건한 토대를 마련해 왔기 때문이다. 사실 뉴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대다수 세부적인 정책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주정부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었다. 당시 연방정부가 뉴딜정책 추진 때 심혈을 기울였던 점은 각 주의 정책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사례들을 분석하고 취합하는 일이었다. 예컨대 고령자와 장애인 보호를 위해 추진했던 사회보장법은 시민전쟁 직후 생겨난 고아와 미망인 보호를 위한 펜실베이니아주 외 4개주의 시민전쟁연금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 시행했던 ‘노동관계위원회’는 예전부터 뉴욕주에서 시행하고 있었던 정책이다. 다시 말해 뉴딜정책의 성공은 혁신적이면서도 강력한 지방분권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각종 사회복지정책 기획에 있어서도 전문화된 의회를 보유한 각각의 주정부 정책 사례를 벤치마킹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주정부들의 혁신적인 정책을 해당 주뿐 아니라 연방 수준까지 확산시키는 성공 모델을 이룩했다는 점에서 지방분권의 가치와 의의를 한 단계 더 높였다.

반면 우리나라 대통령 소속 자문기구인 지방분권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자치분권 종합계획’은 지방분권의 핵심 가치와 문재인정부가 지향하는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방분권의 핵심 행위자인 지방의회의 참여는 계획 수립 단계부터 배제됐고, 그로 인해 지방의회의 기능 개선 방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았다. 이런 계획으로는 지방분권을 통해 정책에 온전한 생명력을 불어넣겠다는 청사진이 제대로 구현되기 어렵다.

지방분권을 통한 의회의 전문화가 가져올 장점은 매우 명확하다. 일련의 연구를 보면 지방의회의 전문성 강화는 지역구 시민과 더 많은 접촉 기회를 제공함을 골자로 한다. 이는 곧 시민 의견이 의정활동에 반영될 확률과 정책 성과에 대한 체감을 제고해준다. 또 전문화된 의회의 의사결정 과정은 당파성보다 소신에 의한 표결 가능성을 높여주며 의원 1인당 법안 발의 수도 월등히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지방정부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수직적이기보다 상호 보완적 관계를 유지해 지방정부에 대한 견제와 협업이 용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전문화된 의회는 앞선 뉴딜정책의 예처럼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정책을 수립할 가능성의 모태가 된다. 실생활과 밀접하게 맞닿아 설계된 정책은 다른 지방자치단체로 확산될 가능성 역시 높게 나타난다.

이제라도 국민의 삶을 바탕으로 지방분권의 지향점을 밑그림부터 세세하게 그려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정책 효과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민생 영역을 각 지방자치단체의 상황에 맞게 쪼개고 나누면서도 지방분권의 의의와 가치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한기영 서울시의원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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