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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의 기적] 폭력과 에이즈 부르는 ‘조혼 악습’… 대물림 고통 끊어야

<7> 잠비아 조혼·에이즈 근절 운동 동참

[밀알의 기적] 폭력과 에이즈 부르는 ‘조혼 악습’… 대물림 고통 끊어야 기사의 사진
김정석 서울 광림교회 목사가 지난 11일 잠비아 총궤사우스 소재 ‘희망의집’에서 조혼한 뒤 남편의 폭력을 피해 탈출한 레베카씨의 손을 잡고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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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습, 그로 인한 고통은 당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쁜 유산’이 악습의 또 다른 이름이다. 18세 미만의 여성 중 31.0%가 경험하고 있는 잠비아의 조혼문화가 그런 경우다.

지난 11일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에서 동쪽으로 35㎞ 떨어진 총궤사우스에서 만난 레베카(22·여)씨는 생이별한 아들 브라이트(5)의 사진을 꺼내 보여줬다. “열다섯 살이던 2011년 40대 중반 남편과 결혼했지만 행복했던 적이 없었어요. 2013년 아들을 낳았지만 남편의 폭력은 더욱 심해져 아이가 16개월 됐을 때 도망치듯 집을 나왔습니다. 지금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얼른 졸업해 직장을 갖고 아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브라이트가 너무 보고 싶어요.” 그는 현재 조혼한 여성들을 보호하고 있는 ‘희망의집’에 살며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쉼터에서 만난 이들은 파란색 단체복을 입고 있었다.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면 여학생 티를 벗지 못했지만 모두 결혼과 출산을 경험했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국민일보와 한국월드비전은 서울 광림교회, GOODTV와 함께 잠비아의 조혼·에이즈 근절 캠페인에 동참하기 위해 이날부터 이틀간 조혼자 보호시설과 조혼 가정을 방문했다. 김정석 서울 광림교회 목사는 희망의집에서 레베카의 사연을 듣고 난 뒤 손을 맞잡았다. 그러고는 “당신의 귀한 딸이 좌절을 딛고 꿈을 이뤄 자녀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김 목사는 잠비아의 조혼문화 근절과 에이즈 예방 캠페인이야말로 잠비아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첩경이라고 했다. “가난한 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음식을 지원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나쁜 유산을 남기는 악습 ‘조혼문화’를 근절시키는 일을 돕는다면 잠비아가 품고 있는 여러 가지 나쁜 관행을 일거에 줄일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관심을 갖고 잠비아를 방문했는데 현장을 찾아 실제 피해 입은 아이들을 보니 기가 막히네요.”

12일엔 루사카에서 동남쪽으로 62㎞ 떨어진 음파시 지역에 살고 있는 는수비샤(18·여)씨의 집을 방문했다. 이 지역은 잠비아 월드비전의 총궤사우스 사업장이 관할하는 곳이다. 망고나무가 만든 넓은 그늘 아래 앉아 있던 는수비샤씨가 11개월 된 아들 모요와 함께 일행을 맞았다. 1년 전 결혼한 그는 남편의 지속적인 폭력으로 가출해 할머니 집에 머물고 있다. 그는 “다시는 (남편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잠시 뒤 태어날 때부터 에이즈 보균자로 투병 중인 남동생 몸폴로라(12)가 대화에 끼었다. 에이즈는 조혼했던 어머니가 물려준 유산이었다. “보건소에 에이즈 약을 타러 다니는 게 소문이 나 아무도 나와 놀아주지 않아요. 사실 건강이 좋지 않아 놀 수도 없어요. 앉아서 친구들 축구하는 걸 보는 게 일상이에요. 엄마가 고통스러워하다 세상을 떠났는데 저도….” 말끝을 흐린 아이의 눈엔 슬픔이 가득했다.

옆 마을 물야타(20·여)씨는 럭키(7)와 루시(2·여)의 엄마로 열세 살에 결혼했다. 럭키를 임신했을 때 남편이 두 번째 부인을 데려왔고 비극이 시작됐다. “그때 남편이 ‘언제든 원하면 떠나라’고 했죠. 버린 겁니다. 지금도 씻을 수 없는 충격이에요. 급기야 루시를 임신했을 때 세 번째 부인을 들였고 더는 견디지 못하고 고향으로 도망치듯 돌아왔습니다. 남은 건 아이들과 가난뿐이네요.”

조혼은 어김없이 학업의 중단으로 이어진다. 는수비샤와 물야타씨도 학교를 그만뒀다. 꿈을 앗아가는 원흉인 셈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폭력과 에이즈는 조혼의 그림자다. 에이즈는 남성들이 부인을 여럿 두면서 문란한 성생활로 그 확산이 빨랐기 때문이다. 조혼 근절에 대한 김 목사의 소신은 단호했다. 그는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는 전도서 11장 1절의 말씀을 인용했다. “지금 던져 놓은 떡을 반드시 다시 찾는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작은 시도라도 당장 시작하라는 희망을 줍니다. 시작은 관심입니다. 작은 관심이 조혼 근절이라는 결실로 반드시 돌아올 겁니다. 한국교회도 이 캠페인에 동참합시다.”

▒ 잠비아 정부 조혼 근절 간담회
조혼은 인신매매나 마찬가지… 지구촌 이웃들 관심 필요


지난 11일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 시내 정부종합청사에서 잠비아 여성부 옥실리아 뷔페 퐁가 차관 주재로 조혼문화 근절을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김정석 서울 광림교회 목사와 존 호세 잠비아 월드비전 회장이 배석했다.

퐁가 차관이 설명한 잠비아의 조혼 실태는 심각했다. 그는 “18세 미만의 잠비아 여성 중 31.0%가 조혼을 하고 있다”면서 “조혼은 가난의 대물림, 에이즈, 또 다른 조혼의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조혼을 한 15∼19세 소녀 중 28.5%가 출산을 경험했는데 성숙하지 않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발병과 학업의 중단 등 복합적인 비극을 낳고 있다”면서 “정부의 관심은 조혼 근절이고 그 과정에 조혼한 이들을 학교로 복귀시켜 교육하는 등 캠페인이 병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잠비아는 2021년까지 조혼 여성 비율을 18.6% 이하로 낮추고 2030년까지는 조혼을 근절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잠비아 정부는 ‘소녀들은 신부가 아닙니다’ ‘어린이들과 결혼하는 건 인권 유린입니다’와 같은 구호를 전면에 내세워 대대적인 인식 개선에 나섰다.

퐁가 차관은 한국교회의 관심도 호소했다. 그는 “아프리카가 조혼으로 고통당한다는 사실을 한국의 교회들이 기억하고 기도해 달라”며 “이 같은 관심이 조혼 근절을 위한 우리의 노력에 큰 힘이 된다”고 밝혔다.

김 목사도 이에 공감했다. 그는 “조혼은 사실 인신매매나 마찬가지”라면서 “10대 초반 아이들이 출산하고 남편에게 학대당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비극이며 잠비아의 미래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이 같은 캠페인을 위해 한국의 기독교인들도 지구촌의 이웃으로서 마음을 보탤 것”이라며 조혼 근절 캠페인 지지를 약속했다. 그는 “한국의 기독교인은 아픔 속에 있는 세계의 이웃을 향해 눈을 돌려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신앙도 더욱 성숙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호세 회장도 국제 사회의 관심을 요청했다. 그는 “잠비아 월드비전은 조혼을 막기 위해 정부와 긴밀히 협조하고 있고 최근엔 음웨루와 루암파, 음피카 지역에서 조혼을 앞둔 150명의 소녀들을 대피시켰다”면서 “조혼이라는 악습을 막는 데 국제 사회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했다.

총궤사우스·루사카(잠비아)=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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