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에서] ‘2032 서울·평양올림픽’ 기사의 사진
냉전시대, 미·중 수교의 물꼬를 튼 건 스포츠였다. 1971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미국 대표팀이 중국 대표팀 초청으로 베이징을 방문하면서 역사적인 핑퐁외교의 서막이 열렸다. 핑퐁외교는 이듬해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양국은 국교를 수립했다. 스포츠 외교라는 말은 이때부터 생겼다.

핑퐁외교는 한반도로도 건너왔다. 분단 후 최초로 구성된 남북 탁구 단일팀은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에서 난공불락 중국을 꺾고 우승함으로써 ‘원 코리아’의 희망과 감동을 세계에 심어주었다. 이렇듯 스포츠는 대결 국면에서 화해로 나아가는 물꼬를 트는 마중물 역할을 해왔다. 이념과 종교, 언어와 피부색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는 것이 스포츠의 가장 큰 힘이다. 스포츠가 가장 비정치적이어서 그렇다.

지난해까지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한 해에 세 차례 정상회담이 열릴 만큼 개선시킨 단초를 연 것 역시 스포츠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특사단이 상대의 경계를 넘어 평화를 여는 길을 닦았고, 그 길 위에서 정상들은 서로를 포옹했다. 핑퐁외교가 그랬던 것처럼 평창올림픽 또한 스포츠 외교의 성공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올림픽 발상지, 고대 그리스에선 하던 전쟁도 중단하고 올림픽을 열었다. 창칼을 내려놓고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를 겨룬 올림픽은 평화 그 자체였다. 정부가 2032년 올림픽을 북한과 함께 서울과 평양에서 공동 개최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방한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이 같은 뜻을 전달했고, 바흐 위원장은 적극 돕겠다고 호응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평양 정상회담에서 올림픽 공동개최 추진에 합의했다.

왜 2032년인가. 지난해 9월 페루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2024년 파리, 2028년 로스앤젤레스로 올림픽 개최지가 결정돼 서울·평양올림픽은 일러야 2032년 개최가 가능하다. 여건과 분위기는 좋다. IOC도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데다 대륙별 개최지 안배 원칙에 따라 2032년 올림픽 개최지가 아시아에 배정될 가능성이 커서다.

올림픽은 국가 수준과 브랜드 가치를 단박에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88 서울올림픽은 우리나라 민주화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국가와 국민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대동(大同)의 마당이 됐다. 대한민국을 올림픽 전과 후로 나누기도 하는 이유다. 중국은 2008 베이징올림픽을 통해 중화의 부활을 알렸고, 일본은 1964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패전의 멍에에서 벗어나 미국에 이은 제2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 나치의 선전장으로 전락한 1936 베를린올림픽처럼 실패한 올림픽도 있지만 국제사회는 더 이상 올림픽의 정치도구화를 용납하지 않는다.

국가가 개최 주체인 월드컵과 달리 올림픽은 도시가 개최 주체다. 그래서 대회 명칭이 ‘한일월드컵’ ‘서울올림픽’이다. 1896년 근대올림픽이 시작된 이래 분산 개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게 유일한 감점 요소다. 그러나 남북이 힘을 하나로 모은다면 감점 요인을 상쇄하고도 남을 가점 요소를 만들 수 있다. 2032 서울·평양올림픽이 성사될 경우 최소한 그때까지는 한반도에 전쟁은 없고 평화만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전에 남북이 평화통일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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