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노후·육아 걱정 끝, 3대 열 식구의 일산 단독주택 전세 거주기 기사의 사진
김승일씨, 손녀 시아양, 딸 성희씨, 사위 김태억씨, 아들 지양씨, 며느리 류대희씨, 손녀 시유양, 손자 유준군, 손녀 유나양, 아내 이음전씨(맨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씨 가족이 지난 16일 경기도 고양 자택 계단에서 하트 모양을 만들며 환하게 웃고 있다. 고양=최종학 선임기자
미친 듯 오르는 집값, 전쟁 같은 맞벌이 육아, 아픈 노부모 부양…. 이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대가족제로의 회귀다. 2013년부터 아들과 딸 내외, 손주들과 함께 살면서 이런 고민에서 벗어난 가족을 만났다. 추석을 앞둔 지난 16일 오후 경기도 고양 일산동구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김승일(66)씨네 집을 찾았다.

제법 널찍한 2층 단독주택이었지만 꼬마들 노는 소리에 조용할 새가 없었다. 아들 지양(34·교사)씨는 “줄곧 이렇게 정신이 없다”며 방문객을 안내했다. 먼저 가족을 소개했다. 청소를 주로 담당하는 ‘깔끔쟁이’ 할아버지 승일씨, 밥을 챙기고 가족사를 두루 살피는 할머니 이음전(63)씨가 집안의 어른이었다.

큰딸 성희(36·회사원)씨와 사위 김태억(42·교사)씨는 각각 가족들의 패션과 인테리어를 주로 담당한다. 두 사람에겐 딸 시유(6)와 시아(3)양이 있다. 아들 지양씨와 며느리 류대희(33·교사)씨는 정원 관리와 학습지도를 각각 맡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 유준(5)군과 딸 유나(3)양이 있다. 3대는 어떻게 모일 생각을 하게 됐을까. 할머니 음전씨 얘기다.

“맞벌이하는 딸의 아이를 키워주게 됐다. 얼마 뒤 아들도 결혼해서 손자가 태어났는데 그땐 사부인이 손자를 봐주셨다. 애들이 맞벌이를 하지만 서울에서 집 사기는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워 보이더라. 아들딸과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다 서울로 출퇴근 가능한 경기도에 집을 얻어 살자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이사하기 전날까지 며느리 주변에서는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시어머니에 시누이랑 같이 산다고? 제정신이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못 산다고 해”라고들 했다. 아들 지양씨가 그때 사정을 이렇게 얘기했다.

“신혼집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멀리 사는 장모님에게 아들을 맡기게 됐다. 아내는 직장이 있는 서울 은평구에서 경기도 용인 친정까지 눈물을 흘리며 출퇴근을 했다. 우리는 도저히 육아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가족은 2013년 전원주택에 전세로 들어가게 됐다.

육아를 담당할 어른이 필요하기는 딸이나 사위도 비슷했다. 가족들이 모이자 각자 성격과 재능에 맞는 역할을 담당했다. 맞벌이 부부 두 쌍은 매일 카풀로 서울로 출퇴근을 하고, 노부부는 아침마다 어린이집에 아이들 등원시키는 장면을 찍어 모바일 메신저 동영상으로 띄워준다. 젊은 두 부부는 부모 덕분에 아이와 집 걱정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됐다. 삶의 질이 높아졌다.

하지만 어린 네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는 힘에 부칠 때가 적지 않았다. 그래도 두 어른은 “화날 때도 있지만 웃을 일이 더 많다. 자식들 얼굴을 매일 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사위는 “여러 사람이 각자 일을 분담하니까 결과적으로 내 일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개인 시간을 갖기 어렵고, 자녀들을 일관성 있게 훈육하기 어려운 단점도 있다. 사위는 “늦잠, 친구, 자유, 평화, 휴식, 독서, 자기 성찰…. 여기 살면서 포기하는 것들”이라고 했다. 사실 이렇게 살아가는 데는 배려가 많이 필요하다. 며느리는 “친구가 집에 놀러 오면 가족들이 고기를 구워주고 더 배려해 주신다. 너무 좋은 가족을 만났는데 다른 분들 속상하실까 봐 자랑을 못 하겠다”며 웃었다. 지난해에는 우여곡절 끝에 이 집을 사게 됐다.

각자에게 고맙거나 미안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아들은 “쉽지 않을 텐데 같이 살아가는 매형과 아내가 고맙다”고 했다. 며느리는 “어머니가 가장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할머니는 “어린 손주들 돌봐주는 남편이 고맙다”고 했다. “엄마가 가장 고맙다”는 딸은 “육아, 주택, 노인 문제 다 대가족으로 해결된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들은 대가족을 이뤄 살면서 서로에게 힘이 돼주고 있다. 여건이 되면 나중에 큰 터를 얻어 각자 독립된 집을 짓고 살길 바란다. 승일씨네 가족은 매년 추석이면 마당에 나가 모두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다. 올해 추석에도 이 집은 동네에서 가장 시끌벅적할 테다. 이들은 가족 얘기를 담은 책 ‘사리현동 신 대가족 이야기’(W미디어)를 최근 출간했다.

고양=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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