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선도 <34> 43년 목회 마무리 앞두고 리더십 승계 문제 고심

부목사 출신 후보자 3명 모두 고사, 비난 무릅쓰고 김정석 목사 세워

[역경의 열매] 김선도 <34> 43년 목회 마무리 앞두고 리더십 승계 문제 고심 기사의 사진
김선도 서울 광림교회 원로목사가 2013년 7월 교회에서 열린 호렙산기도회에서 나무 십자가를 잡고 기도하고 있다.
나의 43년 목회활동은 공식적으로 2001년 4월 은퇴함으로써 마무리됐다. 리더십 승계 문제가 가장 크게 다가왔다. 승계란 선임 목회자의 업적이나 전통, 유산을 물려받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목회와 신학, 전통의 연속성이 선임자로부터 후임자에게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승계 대상자는 광림교회의 생리를 잘 아는 부목사 출신 목회자였다. 교회는 국내 지교회는 물론 세계선교의 비전을 지속시키고 발전시켜야 할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후보자는 3명으로 압축됐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면서 부탁했다. 하지만 3명 모두 정중하게 거절했다. 부목사 출신들은 광림교회 사역 규모와 방향성을 알고 있었던 만큼 부담도 컸던 것 같다. “감독님, 죄송합니다. 부담감이 너무 큽니다. 제가 잘못 맡았다가는 광림교회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퇴임일이 다가오면서 염려가 커졌다. 아무리 기도해도 속 시원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선배 목사님들과 모임을 갔는데 최훈 이만신 목사님이 예상외의 충고를 했다.

“감독님, 이 문제는 광림교회 하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드님이 목회자로 잘 훈련돼 있지 않습니까. 사회의 비판적 여론이 있다 해도 포기해선 안 됩니다.” 그날 밤잠을 잘 수 없었다. 부목사 중 후임자를 청빙하려던 생각이 흔들렸다.

나는 자녀교육만큼은 광야교육을 고수하는 사람이다. 건강한 학교에 자녀를 보내야 하며 자녀는 반드시 부모 손을 떠나 고생하면서 혼자 공부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장남 김정석 목사를 기독교 정신으로 설립된 거창고등학교에 입학시킨 것도 이 같은 이유였다.

장남은 서울신대와 감신대에서 공부했다. 인천 강화에 있는 미자립교회에서 6년간 목회할 때 재정지원을 일절 하지 않았다. 미자립교회를 자립교회로 성장시킨 것은 장남이 기도하고 씨름해 낸 하나님의 은혜였다. 아들은 미국 애즈베리신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도 도서관에 살다시피 했다.

이후 목회를 배우라고 광림교회로 불렀을 때도 김정석 목사는 4년 연속 교구 성장률과 목회실적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목회 리더십의 연속선상에서 장남이 적합하다. 광림교회 생리와 목회정신, 교육, 인격적으로 제일 깊게 체화된 후보도 아들이다.’

고민이 깊어졌다. 매일 하나님 앞에 매달렸다. ‘하나님, 무엇이 광림교회와 한국교회를 위한 일입니까.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의 결단이 정말 자식에게 특권을 물려주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제가 비난을 무릅쓰고 결단해야 하는 것입니까.’

거의 1년 이상 고민하다 장남에게 말했다. 그날 아들의 반응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예? 아버지, 지금 저에게 무슨 말씀을 하신 겁니까.” 그때부터 아들은 코가 석자나 빠진 사람처럼 어깨가 축 처진 채로 다녔다.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 3월 은퇴를 1년 앞두고 리더십 승계를 발표했다. 교회 내부에선 아무런 소동이나 이견도 없었다. 예상했지만 외부에서 부자간에 리더십이 승계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독재세습 이야기가 나왔다.

건전한 담론의 장은 펼쳐지지 않았다. 공격과 비난이 빗발쳤다. 그때 확신이 하나 있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 교회의 선택이 올바른 판단이었는지 아닌지 그때 밝혀질 것이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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