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한장희] 무신불립 부동산대책 기사의 사진
아니기를 바라지만 9·13 부동산대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논어에 나오는 ‘무신불립’(無信不立·믿음이 없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이 그 이유다. 투기꾼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도 대책의 지속가능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부동산 불패 신화’와 ‘정책은 언젠가 변한다’는 믿음이 시장엔 이미 뿌리 깊게 박혀 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은 꼭 잡겠다’던 노무현정부가 “헌법보다 고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했던 8·31 대책이 몇 년 지나지 않아 흐물흐물해진 기억도 있다.

부동산대책에 대한 불신은 정부가 자초했다. 불황이 오면 부동산 경기를 부양시키고, 과열되면 규제를 강화하는 임기응변식 대책을 남발한 결과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정부뿐만이 아니다. 1960년대에도, 70년대에도, 80년대에도 그랬다. 특별법, 그린벨트, 종합부동산세 등 수많은 투기 대책이 시행됐다. 그러다 경기가 나빠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부동산대책은 경기 부양책으로 둔갑했다. 이 때문에 ‘경기부양-유동성 증가-주택가격 상승-투기종합대책’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이 거의 10년 주기로 반복됐다. 그 사이 부동산대책에 대한 불신, 즉 기다리면 바뀐다는 생각은 고착화했다.

최근 집값 오름세는 저금리 기조에 따른 과잉 유동성이 주택시장으로 쏠린 결과다. 노무현정부 당시 세종시와 혁신도시 건설로 풀린 토지 보상금처럼 교육정책과 지역 균형발전 실패에 따른 서울 선호 현상 강화가 집값 급등 랠리에 불을 붙였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은 현 정권에 첫 위기를 가져왔다. 일자리정부를 표방했지만 관련 지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급등한 집값은 실질소득을 줄여 소득주도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당황한 정부는 세제와 대출 규제로 투기 수요를 잡고, 서울 주택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공급 대책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방안은 특정 지역에 대한 시장 대책일 뿐 근본적인 주택정책은 아니다. 원로 경제학자인 정창영 전 연세대 총장은 이제라도 정부가 공의로운 주택정책을 일관되게 집행하는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최근 펴낸 저서 ‘민본경제’에서 “구조개혁이라는 근원적 처방 대신 임기응변적이고 수월한 부동산정책을 사용한 경기 조절은 지속적인 효과를 내기 힘들었고 양극화 같은 사회적 부작용만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부동산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가장 중요한 정책 목표인 서민의 주거 안정은 소홀히 취급됐고, 그 결과 저소득층의 주거 불안과 주거비 부담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최저 주거 기준에 미달하는 열악한 집 또는 쪽방이나 고시원 같은 ‘집 아닌 집’에 사는 아동·청소년도 2015년 기준 94만명(전체의 9.7%)이나 된다.

정 전 총장의 제안처럼 앞으로 정부의 주택정책은 투기억제책이나 경기부양책, 즉 경제 수단이 아닌 집 없는 서민에게 주거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사회정책 차원으로 전환돼야 한다. 스스로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산층 이상의 계층은 과감히 시장에 맡기고, 소득 5분위 계층 이하 약 550만 가구의 주거 안정을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둬야 한다. 구체적으론 적정 수준의 주거 기준을 갖춘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교통·교육 여건 등이 좋은 곳 위주로 충분히 공급해주고, 임대료 지원 등을 병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체 주택의 5.9%(2016년 말 기준) 수준인 장기공공임대주택 비중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5%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재원 마련 측면에서 볼 때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중 공시가격 현실화를 통한 실질적인 보유세 인상 방안은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취득세는 내리고 보유세는 올려야 투기 수요를 억제하면서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하고, 경기 변동에 따른 지방 세수의 과도한 변화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장희 사회부장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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