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카퍼레이드 기사의 사진
이에리사 휴먼스포츠 대표는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 우승을 이끌었다. 국회의원 출신인 이 대표는 열아홉의 나이에 19게임을 전승하며 우승을 견인했다. 우리나라 구기 역사상 첫 세계 제패였다. 이 대표는 한 달간 전국을 돌며 카퍼레이드에 참가했다. 스포츠 스타와 감독의 금의환향은 환영대회와 카퍼레이드로 이어졌다.

미국 대통령을 맞을 때도 성대한 카퍼레이드는 단골 이벤트였다. 가장 많은 인파가 동원된 것은 74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방한한 때였다. 초등학생을 포함해 180만명이 거리에 나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었다.

79년 지미 카터 대통령의 카퍼레이드 때는 80만명이 거리를 메웠다. 한국 정부가 동원령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인파가 몰렸다. 83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방한 때는 전두환 대통령이 150만명을 동원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 대통령이 미국의 환심을 사려고 군중 동원을 적극 지시했을 것이다. 87년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미국 대통령에 대한 의전이 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8일 평양에서 무개차를 타고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한복을 입은 여성들, 양복과 인민복 차림의 남성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조국통일”을 연호하며 남북 정상을 맞았다. 청와대는 환영 인파를 10만명으로 추산했다. 대부분 동원된 시민이었을 것이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때는 60만명이 연도에 나왔다. 군사정권 시절의 남한이나 독재국가인 북한에서나 가능한 수법이다.

김 위원장이 답방 차원에서 서울을 방문하기로 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을 경우’라는 전제조건이 붙었지만 연내 방문이 유력하다. 이제 우리 정부는 과거처럼 시민을 동원할 수 없다. 진보진영은 환영하겠지만 보수진영은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

김 위원장 사진이나 인공기를 불태우고 ‘처벌’을 요구하는 피켓까지 나올 수 있다. 과연 이런 상황이 전개될 경우 김 위원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못 궁금하다.

염성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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