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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행] 남북전쟁과 ‘하나됨’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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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들의 노예 해방을 거부하며 사우스캐롤라이나, 미시시피 등 11개주가 남부연합(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을 결성하면서 촉발된 미 남북전쟁은 62만명의 사망자를 냈다. 같은 국민들끼리 싸워 당시 인구의 2%가 사망한 것이다. 지금이라면 3억명이 넘는 미국 인구 중 600만명이 사망하는 내전이 일어난 셈이다. 백두산 정상 회동을 보는 시점이라 특히 떠오르는 의구심 하나는 ‘수십만명의 목숨을 서로 빼앗으며 원수처럼 지냈던 사람들의 자손들이 어찌 저리 아무 일 없었던 듯, 그것도 세계 최강이라는 면모를 과시하며 살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유사한 내전을 겪은 우리이기에 그 궁금함은 참으로 절실하다. 한반도 평화가 정책적 실체로 가시화되고 있고, 그리 되어야 한다는 국민 의식이 점차 고조되는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여러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남부군 모두 전범재판이나 일체의 책임을 묻는 과정을 밟지 않고 원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 종전 조건이 그 한 이유로 해석된다. 죽고 죽이는 싸움에서 이긴 쪽이 진 편에 법적으로 보복하기보다 충분한 자생의 여지를 제공함으로써 화해의 발걸음에 속도를 냈다는 주장이다(당시 결정을 내린 북부군 지휘자 그랜트 장군의 이런 유연한 자세는 종전 후 남쪽 지역에서 자유의 몸이 된 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각종 학대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보다 외부적인 요인으로 외국과의 전쟁이다. 종전 후 미합중국에 다시 편입된 남부 주들에서 흑인 학대는 일상에서 ‘문화적’으로 지속되었고 남과 북의 주들 사이에는 여전히 이질감이 존재했다. 이런 모래알 같은 상황이 쿠바 독립을 놓고 미국이 스페인과 전쟁을 벌이게 되면서 미합중국의 내적 단결은 강화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이 이기면서 쿠바가 독립한 것은 물론 푸에르토리코, 괌과 아시아의 필리핀을 얻게 되었다. 모두 미국 역사의 흐름을 일부분 설명하는 것이지만 더욱 설득력 있는 한 가지 주장을 빼놓을 수 없다. 역사적 우연일지 모르지만, 미국은 영국보다 늦게 산업혁명기를 맞았고 그 시기는 바로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에 찾아온다. 도금시대(Gilded Age)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미국 사회는 철강, 석유, 철도 등 주요 산업에서 카네기, 록펠러, 밴더빌트 등 지금도 익숙한 재계 거물들을 탄생시켰고 영국 주도의 ‘팍스 브리태니카’ 시대를 종식하고 세계 일인자로 부상한다. 이 경제 성장 과정에서 농업 중심의 남부와 상공업이 발달한 북부는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지면서 ‘윈윈 게임’으로 역사의 흐름을 이끌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서로에 대한 대규모 살상의 기억도 치유되었다는 것이 경제적 설명의 요지다. ‘그 경제적 치유의 과정이 21세기 한반도에 재연될 수는 없을까’ 하는 강한 기대를 불러내기에 이 경제적 해석은 유독 눈길을 끈다.

링컨 대통령은 ‘사면과 재건 선언’을 종전 2년 전에 발표하면서 미합중국의 화해 방안을 제시하였다. 우리도 미리 준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것도 대통령 한 사람의 활약에 박수만 치는 모양새가 아니라 강원, 인천, 경기 등 접경 지역 지자체의 활발한 남북 협력 프로그램 모색 등 함께 참여하는 ‘남북 상생의 길’로 가야겠다.

주영기 한림대 미디어스쿨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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