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에서] 베트남 트라우마를 넘어 종전선언으로 기사의 사진
연내 종전선언이 가시화되는 분위기다. 당초 종전선언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지금까지 휴전 상태인 한반도에서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이루자는 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더구나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하고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지지한 종전선언이다. 그런데도 이 문제가 쟁점이 된 것은 ‘베트남 트라우마’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3년 1월 27일 파리에서 북베트남(월맹), 남베트남(월남), 미국 사이에 베트남 평화협정이 체결된다. 1955년부터 계속된 전쟁을 끝내자는 협정이었다. 이에 따라 1973년 1월 29일 미국 닉슨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한 뒤 3월 29일 베트남에서 미군을 완전히 철수시켰다. 하지만 북베트남은 1974년 평화협정을 위반, 공격을 재개했다. 남베트남에 대한 미군의 지원은 없었다.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군 탱크가 남베트남 수도인 사이공의 대통령궁 철문을 부수고 들어가 항복을 받아낼 때까지 미군은 오지 않았다. 남베트남이 공산화된 후 대규모 학살과 숙청이 진행됐다. 10년 동안 약 10만명의 남베트남 유력 인사들이 사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처형됐고 100만명 정도가 수용소에 보내졌다.

종선선언을 거쳐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유엔군사령부가 해체되고 미군이 철수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엔사에는 미국을 비롯해 호주, 캐나다, 프랑스, 노르웨이, 태국, 영국 등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일부 국가는 한·미 연합훈련에 연락장교 등을 파견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한국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유엔사가 해체되면 전쟁이 나도 유엔군이 참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군 파견에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엔사는 전쟁 발발을 억제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우려에 대해 정공법을 택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후 보수성향 매체인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유엔사의 지위가 흔들리거나 주한미군이 철수 압박을 받으리라는 의심도 일부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또 “주한미군 주둔은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과 무관하게 한미동맹이 결정할 문제이고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동의하고 있다”라며 “평화협정이 체결된 후에도, 심지어 남북이 통일된 후에도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엔사와 주한미군 유지를 종전선언에 대한 안전판으로 제시함으로써 보수층을 중심으로 강하게 형성돼 있는 종전선언에 대한 불안감을 불식시키고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북미 협상의 돌파구를 열려는 의미로 해석된다. 종전선언은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선언으로 체제 안전 보장으로 가는 출발점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줘야 핵을 포기할 것이다. 불가역적으로 핵을 포기한 뒤 군사적 공격을 받는 것을 가장 끔찍하게 여긴다. 종전선언을 통해 내부적으로 비핵화 명분을 얻으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는 것이 역지사지다. 반대로 북한이 종전선언에도 불구하고 비핵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종전선언을 없던 일로 하면 된다. 문 대통령도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종전선언은 북한에만 유리한 것이 아니라 비핵화를 가속화하는 수단이 돼야 한다.

신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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