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인찬 <3> 빼앗긴 유산… 중·고등학교 때 등록금 못 내 벌서

큰아버지가 사용… 교복·체육복도 못 사, 원망하는 대신에 이 악물고 공부

[역경의 열매] 정인찬 <3> 빼앗긴 유산… 중·고등학교 때 등록금 못 내 벌서 기사의 사진
정인찬 총장이 지난해 웨신대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부모님은 돌아가시면서 내게 살던 집과 상당한 재물을 남겨 놓으셨다. 하지만 나는 당시 물려받은 재산을 관리하기엔 너무 어렸다. 큰아버지는 부모와 내가 살던 집을 팔아 사업자금으로 사용했다. 패물과 돈까지 모두 그렇게 썼다.

당시 할머니가 큰아버지에게 “앞으로 우리 인찬이가 공부를 해야 하고 결혼할 자금도 필요하니 꼭 유산을 돌려주라”고 간곡히 말씀하셨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 할머니의 말씀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큰아버지도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어느 날 잠결에 큰아버지가 하는 대화를 엿들었다. 큰아버지는 자식들과 맛있게 음식을 먹으며 “너희는 공부나 잘해. 평생 뒷바라지해줄게”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문득 부모님과 예수님 모습이 떠올랐다. 주님의 세마포를 찢어 나누고 주님을 죽이려 했던 그들이 연상됐다.

큰아버지는 차가운 사람이었다. 내게 학교 등록금은 물론 책이나 교복 한번 사준 일이 없다. 초등학교는 등록금이 없으니 그냥 다녔고 중·고등학교 때는 등록금을 못내 벌을 서야했다. 교무실 앞에서 손들고 있기 일쑤였다. 몇몇 선생님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셨는지 출석부로 머리를 때리며 한마디씩하고 지나갔다.

“예끼 이놈.” “너 뭐 잘못했지.”

억울했다. 죄 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떠올랐다. “예수님의 고통이 지금 내 고통보다 더 크셨을거야.”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다행히 성적은 전교에서 최상위권에 들었고 장학금으로 등록금을 면제받았다. 교복 사 입을 돈이 없었다. 체육복도 없어 체육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운동하지 못하고 벌을 섰다. 선배가 쓰던 헌책을 물려받았다.

어느 날, 학교에서 문교부장관배 문예대회가 열렸다. 시와 수필, 소설 부문에서 당선되면 상패와 상금을 주는 행사였다. 나는 ‘기원’이라는 시와 ‘울지 않는 아이’라는 제목의 소설로 문예부문 대상을 받았다. 받은 상금으로 교복을 맞추고 책과 체육복을 샀다. 하나님은 감사하게도 여러 다른 방법으로 내 필요를 채워주고 계셨다.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해야했다. 고모가 “큰아버지에게 입학금과 등록금을 달라고 해라. 안주면 법적 투쟁을 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나는 돈 때문에 큰아버지와 싸울 생각은 없었다. 이미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런 일들을 초월하고 있었다.

가난은 실로 고통이었다. 그러나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는 성경말씀이 간증이 됐다. “우리 주 예수 외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내가 배설물로 여기노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됐다.

돌이켜 생각하면 가난은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다. 사는 데 불편할 뿐이다. 매순간 재물이 부하고 죄 짓는 것보다 가난이 낫다는 것을 깨달으며 살고 있다. 가난할 때 비굴하지 않았고 친히 원수를 갚지 말라는 성경말씀을 실천했더니 하나님께서 내 삶을 온전히 책임지셨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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