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간 경험한 환자의 ‘生과 死’ 담았다 기사의 사진
이국종 아주대 교수가 지난해 11월 14일 총상을 입은 북한군 귀순 병사 수술을 집도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민일보DB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봄이 싫었다. 추위가 누그러지면 노동 현장에는 활기가 돌고 활기는 사고를 불러, 떨어지고 부딪혀 찢어지고 으깨진 몸들이 병원으로 실려 왔다. 봄기운에 밖으로 이끌려 나온 사람들이 늘었고, 늘어난 사람만큼 사고도 잦아 붉은 피가 길바닥에 스몄다.”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저 문장을 읽는다면 많은 사람들은 소설가 김훈의 그것을 떠올릴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들 역시 마찬가지다. 자간과 행간 사이에는 저자의 비장한 각오와 현실을 바꾸려고 발버둥 쳤지만 번번이 실패한 데서 느낀 허무의 감정이 진하게 묻어난다. 실제로 이 책의 저자는 “김훈의 ‘칼의 노래’를 등뼈 삼아 글을 정리해보려 애썼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이런 책을 펴낸 사람은 누구일까. 주인공은 아주대 중증외상센터장인 이국종(49)이다. 2일 출간되는 ‘골든아워’(흐름출판·사진)는 그의 첫 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관심을 모으는 기대작이다. 이국종은 약 6년간 틈틈이 적어 내려간 글들을 엮어 이 책을 완성했다.

골든아워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17년간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한 의사의 이야기다. 제목인 골든아워는 생과 사를 가르는 결정적 시간을 가리킨다. 책엔 이런 글귀가 등장한다. “병원과 병원을 전전하다 중증외상센터로 오는 환자들의 평균 이송 시간은 245분. 그 사이에 살 수 있는 환자들이 죽어나갔다. 선진국 기준으로 모두 ‘예방 가능한 사망’이었다.”

골든아워는 모두 2권으로 구성됐다. 1권엔 2002∼2013년의 기록이, 2권엔 2013년부터 최근까지의 이야기가 각각 담겨 있다. 책에 실린 내용 중 일부는 과거에 ‘이국종 비망록’이라는 이름으로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었다. 의사라는 직업이 갖는 숭고한 가치를 되새기게 만드는 작품이자 한국의 허술한 의료 시스템을 고발하는 보고서로도 읽힌다.

예컨대 그는 “중증외상센터 설립 과정에서 실제 한국 사회가 운영되어가는 메커니즘을 체득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시스템은 부재했고, 근거 없는 소문은 끝없이 떠돌았으며, 부조리와 불합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돈 냄새를 좇는 그림자들만이 선명했다”고 비판한다.

이국종은 수술대 앞에 섰을 때처럼 냉정하게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 일점일획도 허투루 여겨지지 않는 책이다. 가슴이 뻐근해지는 내용도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에게 ‘아덴만의 영웅’이라는 수식어를 안긴 석해균 선장 수술과 관련된 이야기 역시 비중 있게 실려 있다.

이국종은 자신의 책을 “환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싸우다 쓰러져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아울러 선진국형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지금으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난 뒤, 또 다른 정신 나간 의사가 이 분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 시스템을 다시 만들어보고자 마음먹는다면, 우리의 기록은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그 기록의 일환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