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언약도 신앙고백’ 국내 첫 공개

‘스코틀랜드 언약도 신앙고백’ 국내 첫 공개 기사의 사진
정성구(한국칼빈주의연구원장) 박사가 지난 27일 경기도 성남 칼빈박물관에서 스코틀랜드 언약도 대표들이 1638년 작성한 신앙고백과 서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남=송지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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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학교나 자유교회 신학교, 존 낙스(John Knox)가 목회하던 성자일레스교회에도 없는 자료입니다. 그레이프라이어스교회에 보관된 원본을 그대로 담은 사본으로선 세계에서 유일할 겁니다.”

경기도 성남 칼빈박물관에서 지난 27일 만난 정성구(76·한국칼빈주의연구원장) 박사는 박물관 한편 보관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보관실로 들어가 걸음을 멈춘 곳엔 붉은색 커튼이 있었다. 커튼을 젖히자 누렇게 색이 바랜 종이에 영문이 빼곡하게 쓰인 고문서가 나타났다. 그가 가리킨 곳엔 ‘The confession of faith(신앙고백)’란 문자가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가로 70㎝ 세로 90㎝ 크기 문서의 절반 아래엔 필체가 다른 200여개의 서명이 나열돼 있었다. 마지막 서명자의 아래쪽엔 이 문서가 1638년 만들어진 원본의 복사본임을 알리는 문구가 보였다.

“1638년 2월 28일. 1200여명의 스코틀랜드 성도들이 그레이프라이어스교회 앞마당에 모였습니다. 엄숙하게 신앙고백을 한 후 대표 200여명이 서명을 했지요. 국왕이나 교황은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임을 선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진리를 선포한 이들은 지붕 없는 감옥에 갇혀 추위와 굶주림 속에 순교의 잔을 마셨습니다.”

제2의 교회개혁운동이라 불리는 ‘언약도운동’은 스코틀랜드 장로교 성도들의 진리투쟁 운동이다. 국왕 찰스 1세가 왕권신수설을 주장하며 ‘국왕은 국가의 머리인 동시에 교회의 머리’라는 칙령을 내리자 성도들은 이에 맞서다 박해를 받았다. 역사가들은 핍박받은 성도들을 ‘언약도’라 불렀고 1638년 이후 50년간 계속된 박해로 언약도 1만8000여명이 순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박사는 “언약서 원본은 그레이프라이어스교회 지하 비밀창고에 보관돼 있는데 380년이 지나는 동안 잉크로 적힌 글자가 희미해져 알아볼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2월 영국 리치필드의 고문서 전문점에서 언약서 복사본을 발견한 뒤 과거 촬영해 둔 원본과 수십 차례 대조하고 연구했다”며 “영국 빅토리아(1819∼1901) 여왕 때 발명됐던 복사기술을 이용해 원본이 손상되기 전에 복사해 둔 문서로선 처음 발견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생을 칼뱅주의 연구에 바친 노교수는 “언약도운동을 보면서 80년 전 일제에 무릎 꿇었던 한국교회가 떠올랐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면서 “스코틀랜드 신학자와 역사가들도 발견 못한 문서를 대한민국 노교수의 품에 안긴 건 분명 하나님의 계획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장로교회는 신사참배를 가결한 뒤 지도자들이 앞장서 참배했습니다. 애국헌금을 모아 전투기를 만들어 일제에 헌납하고 ‘장로호’란 이름까지 붙였지요.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진리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거짓 이데올로기를 주장하고 역사를 왜곡하려 하지만 교회 공동체는 입에 재갈이 물려 손가락질만 당합니다. 이 색바랜 문서가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진리수호의 열정을 회복케 하는 밀알이 되길 소망합니다.”

성남=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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