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화 좀 내! 기사의 사진
미칠 듯이 화가 나고 화가 나서 죽을 것 같은 고난의 시기에 나는, 무릇 그리스도인이라면 더군다나 목사라면 온유하고 인자해야 하며 화내면 나쁜 목사인 줄 알았다. 팔복을 읊조리고 주기도문을 주야장천 되뇌는데, 원수도 용서하라는 산상수훈이 기독교 윤리의 중심에 떡하니 버티고 눈을 부라리는데 감히 미워하고 화를 내고 욕까지 하다니. 못나고 못됐다, 자책했다. 불쑥불쑥 치미는 분노와 욕지기를 참지 못하는 나는 못된 목사, 못난 목사다.

나만 그런 줄 알았다. 주변의 목사들도 별반 다를 바 없고 경건한 신자들도 매일반이다. 가슴 한편에 자기 몫의 슬픔과 분노가 서려 있다. 그러고 보니 성경이 달리 보였다. 분노라는 키워드로 성경을 훑어보았다. 진노하시는 하나님, 분노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보였다. 그것을 경건의 일부라 우기고 싶지 않지만 하나님도, 하나님의 사람도 화를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뜨리더라는 것, 적어도 그것은 분명하다.

사도 바울의 말씀부터 보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엡 4:26) 저기서 ‘분’은 ‘화(火)’다. 저 문장만 보면 강조점이 죄짓지 말라는 것으로 보인다. 허나 몇몇 신뢰할 만한 영어성경(KJV, NASB)은 이렇게 번역했다. “화를 내라! 죄는 짓지 마라!” 보았는가. 진술문이 아니다. 명령문이다. 사도께서는 숫제 대놓고 외친다. 이건 명령이야, 화 좀 내!

혹자는 저 명령에 딸린 부대조건을 상기시킨다. 죄지을 만큼 화내서는 안 되며, 너무 오랫동안 분내지 말며,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이 세 가지다. 명령의 제한 조건이 전제 자체, 즉 분노를 허용하는 것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화를 내라는 것이 너무 지나쳐서 세 가지 위험에 빠지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제한 조건이 너무 강해 분노를 원천 차단하는 것도 멀리할 일이다.

하여 저 구절을 이렇게 해석해 보면 어떨까. ‘화 좀 내면 어때, 죄짓는 것도 아니고, 하루 온종일 욕하며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리하여 마귀가 되는 것도 아닌데, 괜찮다, 괜찮아’라고 말이다. 참고 또 참고 쌓아두면 그게 죄가 되고 마귀가 되는 거다. 그러니 차곡차곡 쌓지 말고 아주 조금씩 그때그때 푸는 게 낫다.

예수는 어땠을까. 나는 저명한 무신론자의 책을 읽고 알았다. 그에 따르면 화를 잘 내는 예수는 인격적 결함을 지닌 인물이다. 동양의 다른 성인들과 구루들은 화를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데 예수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성전을 뒤엎지 않나, 바리새인들에게 욕을 해대질 않나. 무지막지하게 저주를 퍼붓는 예수는 모자란 사람인 게다, 무신론자가 보기에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성질부리는 예수에게서 인격적 결함을 보았다면 나는 인격적 성숙과 완성을 본다. 화낼 일은 화내야 하는 거다. 사랑하니까 화내는 거다. 미치도록 사랑하는 하나님과 그분의 성전이 모독당할 때, 가슴이 미어지고 격분하는 것은 내면이 건강한 거다. 노염이 없다면 사랑도 없다고, 관심도 없다고 단언해도 될 터. 분노의 표현은 경건이 부족하거나 인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경건과 성품에 이르는 여정이다.

대략 6년 동안 내가 살던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일명 가정집교회다. 초대교회가 가정교회인 이유를 알았고 그 실재를 경험했다. 허나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했던가. 아주 사소한 것들이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가장 큰 것은 지각이었다. 내게 예배 시간은 11시인데 본인들은 11시30분인가 보다.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정중하게 부탁했다. 그래도 여전하다.

어느 날 문을 우렁차게 열고 미소 띤 얼굴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예배 시간은 공적인 약속이다. 11시에 예배하라고 성경이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은 이상, 11시30분도, 오후 2시도 좋고 저녁에 모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서로에 대한 약속이니만큼 지켜야 한다. 교인 중 한 분이 그날 일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우리 목사님이 화를 많이 냈다고.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아서 고마웠단다. 그리 말해 주니 나도 고맙다.

돌아보면 신앙의 의무라는 관점에서 말하지 않은 것은 참 잘한 짓이다. 허나 내 잘못은 화를 쌓아 두었다는 것이다. 좀 더 명확히 강하게 표현했어야 했다. 그리고 화를 내는 예수님은 본받고 화를 내라는 바울의 명령에는 절대 순종했으나 죽기까지 사랑하라는 말에는 죽기까지 불순종하고 있다. 그래도 하나는 순종했다, 화를 좀 내도 된다는 그 말씀 말이다.

김기현(로고스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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